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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Mar 16. 2020

여성은 돌보는 재능을 타고나는 것 같다고요?

타고난 것 아니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편지형식의 글입니다.


선생님,

아이와 고양이들을 돌보는 저의 근황을 알리자 선생님은 제가 행복해보인다며 '여성은 타인을 돌보고 위로하는 재능을 타고나는 것 같다'고 하셨죠? 여기에 저는 '여성이 돌봄에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돌봄이 성역할이기 때문일 거'라고 답했고요.


저는 사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재능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돌봄을 받는 데에 익숙하죠. 그래서 전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자신이 없었어요. 당연히 많이 서툴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가 잘하더라고요. 스스로도 신기해요. 그런데 제가 엄마라서, 여자라서 아이를 잘 돌보는 거라고 하면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돌보는 재능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 잘 하고 있다면, 책임감을 갖고 잘 키워보겠다고 신경을 쓰고, 책 보고, 유튜브 보면서 공부한 결과입니다. 저는 단지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제가 여성이고 엄마인 것이 좋습니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저를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여성이나 엄마로만 볼 때 저는 저항하고 싶어집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편견에 따른 것이면 더욱 그렇지요. 세상이 여성에게 돌봄의 역할을 부여해놓고는 그들의 사정이 좋을 때는 신성한 능력이라고 치켜세우고, 사정이 나쁠 때는 '애나 봐라'는 식의 말로 그 가치를 폄하합니다. 여성에게 돌봄의 재능이 있다는 말은 언뜻 듣기에는 칭찬같지만, 사실 본능 운운하며 여성에게 그 역할을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 결과 이 세상의 수많은 돌봄 노동들이 있지만 가려져 있고, 노동자는 있는데 급여는 없게 된 것 아닐까요?


저는 성별을 나누어 재능을 말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구분 짓기는 결국 차별의 근거가 될 뿐이니까요.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차이를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의 사고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을텐데 제가 너무 뾰족했나요? 쓸데없이 예민했나요?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까 망설이다 선생님은 제가 좋아하는 분이니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아요.  솔직하게 제 생각 그대로 말하고 오해없는 만남을 갖고 싶었어요. 제 생각을 숨김없이 다 말해도 이해해줄 거란 믿음도 있고요.  선생님, 앞으로는 저에게 여성이라서 재능을 타고 났다고 말하지 말고, 애쓰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


선생님 한 마디에 죽자고 달라든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건강 유의하세요.


20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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