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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Mar 16. 2020

이기적인 엄마가 되고 싶었던 이의 고백

너를 안으면 다시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

슬프고 외로우면 말해, 내가 웃겨줄게


신현림


엄마, 화나고 슬프고 외로우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웃겨줄게 내가 얼마나 웃기는데.

-딸 서윤의 일기



너를 안으면 다시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


네 눈빛 어두운 내 안의 우물을 비추고

네 손길 스치는 것마다 향기로운 구절초를 드리우고

네 입술 내 뺨에 다으면 와인 마시듯 조용히 취해간다


네 목소리 내 살아온 세월 뒤흔들고

생생한 기운 퍼뜨릴 때


고향집 담장 위를 달리던 푸른 도마뱀이 어른거리고

달큰한 사과 냄새, 앞마당 흰 백합,

소금처럼 흩날리는

흰 아카시아 꽃잎 눈이 멀도록 아름다워

아아아, 소리치며 아무 걱정 없던

추억의 시간이 돌아와 메아리친다



'엄마'라는 말만 해도 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때문일 거다. 나는 예전부터 이게 싫었다. 왜 '엄마'는 희생하는 존재이고, 왜 '엄마'는 눈물나는 단어인가 말이다. 나는 이기적인 엄마, 즐거운 엄마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자식을 위해서 무조건 희생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즐겁게 살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엄마'라는 말을 하면서 울지 않고 킥킥거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2019년 기다리던 임신을 했고, 나의 목표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기적으로 출산은 제왕절개, 수유는 분유 수유를 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위해서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를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제왕절개와 분유 수유가 아이에게 유의미하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아이보다는 나를 중심에 놓고 이를 결정했다.(제왕절개와 분유 수유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다.) 자연 분만을 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에게 '내 몸'이니 내가 결정하겠다고 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효자라서 내가 잠을 잘 잔다는 남편의 말에 '내가 잘하는 거'라고 말했고, 만삭인 배를 허락없이 만지는 이에게 '내 배'라고 했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겠다는 나의 목표는 순조롭게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계획대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고 초유만 먹이고 분유 수유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모유를 끊는 과정에서 가슴에서 젖이 흐르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건지. ("우리 아기가 이제 먹지도 않을텐데 왜 혼자 흐르는 거니. 엉엉") 젖양이 얼마 없고 아이가 젖을 잘 빨지 않아 그나마 유축해서 젖병에 먹인게 다였는데 그것도 그렇게 슬펐다.( "우리 아기가 젖을 몇 번 물어보지도 못했구나. 흑흑.") 그렇게 슬프면 모유수유를 하면 되겠지만 난 젖이 잘 나오지 않았고, 모유 수유를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할텐데 그렇게 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매일 밤 울면서 모유수유를 끊었다.


나는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를 강요하는 사회에 반감이 있다. 임신, 출산, 육아에서 몸과 행위의 주체인 여성은 완전히 배제되고, 아이를 볼모 삼아 무엇이 좋다고 압박하는 것은 여성이 선택할 수 없게 하려는 사회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가 아이의 건강에 더 좋다는 것도 대단히 큰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 분만에서 아이에게 좋다는 면역력 샤워는 출산 후 유산균을 먹이면 되고, 모유가 좋다고는 하지만 모유에서도 수은, 농약이 검출되는 세상에 내 모유가 분유보다 더 좋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에 대한 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자연 분만이 더 좋다, 모유 수유가 더 좋다는 기사가 나오면 가슴이 덜컥 한다. 혹시 내가 제왕절개, 분유 수유해서 내 아이에게 안 좋은 건 아닐지 기사를 열심히 읽고 여지없이 죄책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분명히 코웃음치던 기사였는데. 지금도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내 마음이 달라졌다. 내 아이에게 0.001이라도 나쁜 건 안 하고 싶고, 0.0001이라도 좋은 건 해주고 싶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망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20일이 넘은 지금, 신현림 시의 첫 행 '너를 안으면 다시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를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안아 올렸을때의 그 따뜻함, 몽글함, 충만함이 그대로 떠올랐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것 같다고들 하는데 이 구절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초보 엄마인 나는 아직 그것까진 모르겠고, 아이를 안았을때 그 순간 자체가 새로운 인생인 느낌이 다. 아이가 없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다. 나는 아이를 안을 때마다 새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내 이야기다. 아이의 눈빛, 손길, 입술, 목소리 하나씩 떠올리며 더없이 행복해진다. 내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지 몰랐다. 내가 이렇게 예쁜 시를 좋아했던가. 슬프고 비극적인 시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내가 달라졌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려고 했던 '나'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세상 모든 만물에서 내 아이를 발견하는 '엄마'만 있다. 어쩔 땐 아이를 위해선 나같은 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예전의 나를 생각하며 오바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자제시킨다.


출산 전에 선배 엄마들에게 나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겠다고 말했었다. 선배 엄마들은 그게 되면 한 번 해보라고 웃었다. 이제는 선배 엄마들이 웃었던 이유를 알겠다. '아이의 눈빛 어두운 내 안의 우물을 비추고', '손길 스치는 것마다 향기로운 구절초를 드리우고', '입술 내 뺨에 다으면 와인 마시듯 조용히 취해가는데' 이기적인 생각을 할 틈이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불과 출산 전만 해도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겠다는 목표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무조건적 희생보다는 넘치는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안고 매일 새 인생을 살다보면 나도 시인처럼 아이에게 '슬프고 외로우면 말해, 웃겨줄게'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겠지. 그 날을 기대하며 아직 옹알이만 하는 내 아이를 더 많이, 더 꼬옥 안아줘야 겠다. 방금 아이를 재우고 나왔는데, 시를 읽으니 아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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