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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Mar 18. 2020

아들이 김승섭처럼 크면 좋겠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아이가 생긴 후, 누구를 봐도 '내 아이가 저렇게 크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마음에 드는 남자 아이나 청소년이나 어른이 있으면 '내 아들도 저렇게 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찾았다. 내 아들의 롤모델! 바로 김승섭 작가이다.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워낙 좋은 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특히 책의 마지막,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9쪽의 길지 않은 글을 읽으며 눈물이 몇번 툭툭 떨어졌다.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읽다가 울어보기는 처음이다.


슬픈 내용 아니고, 누군가 죽은 것은 더욱 아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고 감동의 눈물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는 눈물. 이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감동을 주었다. '비판적 현실 인식 위에 긍정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놀라웠다.



감자 10킬로를 5천원에 판다는 뉴스를 보고 걱정이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계가 곤란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참 힘들겠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모두가 힘든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어제만 해도 슬쩍 흘러갔던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내가 할 일이 없을지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책 한 권으로,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던 내가 조금은 더 착한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사람은 이렇게 글만으로도 주변을 변화시킨다. 좋은 책은 독자가 더 나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내 아들이 김승섭 작가같은 어른으로 크면 좋겠다. 학력, 직업, 외모 다 좋지만 그것보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이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 사회의 부조리를 모른 척하지 않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어떤 좋은 일이든 그것으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상처가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 아들이 이런 사람이면 정말 좋겠다.


5개월된 아들이 첫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 아들 이름으로 백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 하게 된 생각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따뜻한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아들을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할 것이다. 책의 소제목처럼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봐야 겠다.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어요. 그 고민이 마지막에 닿았던 지점이 그런 거였어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예를 들면, 의과대학 본과 1학년 겨울방학 때, 산업재해를 당한 분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한 달 동안 자원상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저녁에, 제가 기타를 치면서 함께 여러 노래를 부르다가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주변 사람을 둘러봤을 때,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이 저 하나뿐이었어요. 그때 느꼈던 묘한 낯섦 같은 거요.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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