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시작됐다. 한 달이라도 건너뛰면 좋을 텐데, 어찌나 정확하고 규칙적인지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생리는 귀찮고 성가시다. 생리통은 일단 제외하고라도 일주일 정도의 생리기간 동안 생리대를 계속 갈아줘야 하는 것이 귀찮다. 이로 인해 혹시 생리혈이 새서 옷에 묻지는 않을지,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 생리대가 옷에 표시나지 않을지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게다가 생리 전이나 중에는 짜증나고 우울해진다. 좋은 점이라고는 정말 1도 없다.
생리 때마다 울었다
첫 생리는 13살이었다. 자다가 뭔가 이상해서 보니 팬티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게 바로 학교에서 배운 ‘생리’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무서워했던 엄마한테는 왠지 혼이 날 것 같아서 못 가고, 같이 살았던 할머니께 가서 어찌 어찌 처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생리를 처음 했는데 왜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린 나에게 생리는 혼날 일이었나 보다. 나는 생리에 적응을 못했다. 생리를 할 때마다 화를 내면서 울었다. ‘왜 피가 자꾸 팬티에 묻냐고’, ‘왜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오냐고’. 결국 참다못한 엄마에게 혼이 나기 전까지 나는 매달 울면서 화를 냈다.
중학교에 가서 생리에 적응하게 됐을 즈음, ‘생리전증후군’이라는 말을 알게 됐다. 생리전증후군은 여성이 월경이 시작되기 전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증후군으로 배와 머리가 아프고 유방통도 느껴지며 몸이 퉁퉁 붓는 따위의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긴장되고 불안, 초조, 불면증 따위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알게 된 후, 내가 생리할 때마다 울고 불고 한 것이 생리전증후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이해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 이유없이 기분이 안 좋으면 혹시 생리를 할 때가 됐는지를 먼저 확인해봤다.
생리전증후군은 진짜 존재할까?
생리 중인데 왜 우울하지가 않은거지?
그런데 육아휴직 중인 요즘, 나는 생리 전,중,후 모두 별다른 기분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매달 생리할 때쯤이 되면 기분이 안 좋아졌는데 요즘은 왜 그렇지가 않은지 이상했다. 직장에 다닐 때와 집에만 있는 지금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봤다. 직장에서 생리를 할 때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생리대가 표시나지 않게 옷을 어떻게 입을까, 생리혈이 샐까, 냄새가 날까, 생리대를 어떻게 화장실까지 몰래 가지고 갈까.’ 기타 등등. 그런데 집에서는 하루에 몇 번 생리대를 교체하고, 생리혈이 옷에 묻지 않게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차이점은 생리를 감추기 위해 노력하느냐 아니냐이다. 집에 있으면서 생리를 감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니 신경 쓸 일이 많이 줄었고 이로 인해 기분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난 생리전증후군 때문에 우울했던 것이 아니라 생리 때문에 겪게 될 번거로운 일들로 인해 우울했던 것 뿐이었다. 생리 때마다 같이 오는 우울함은 생리 그 자체나 생리전증후군 때문이 아니라 생리로 인해 신경 써야 할 모든 불필요한 일들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까.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들끼리만 있는데도 생리는 ‘그날’, 생리대는 ‘그거’라고 불렀다. 집에서도 생리대를 서랍 깊숙이 꽁꽁 숨겨두었다. 아빠가 보면 왠지 안 될 것 같았다. 대학이나 직장에서 남자들과 함께 생활할 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옆자리에 남자가 있는데 생리대를 갈러 가야 할 때는 난감했다. 계속 눈치를 보다가 생리대를 급히 어딘가에 숨겨서 화장실에 갔다. 남자들이 티를 안내서 그렇지 생리 냄새를 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더 신경을 쓰게 됐다. TV 광고에서는 생리를 ‘매직’이라고 했다. 흰 옷을 입은 여자 모델이 ‘그날에도 자유롭다’고 말하며 ‘파란피’로 생리대의 흡수성을 보여줬다.
광고에서 생리피는 파란색으로 표현된다.
대놓고 또는 은밀하게 생리는 ‘더러운 것’, ‘부끄러운 것’, ‘숨겨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그리고 매달 생리 때 마다 나의 생리를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생리 기간이 다가오기만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만약에 생리가 자랑스러운 것이었다면, 적어도 소변보는 것 정도이기만 했더라도 생리로 인해 우울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생리를 짜증나게 만드는 사회가 있을 뿐
생리전증후군 연구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는 로빈 스타인 델루카가 쓴 <호르몬의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이미 읽었는데, 여러 연구와 근거들을 보면서도 생리전증후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매달 내가 느끼고 있는데 이게 없다니 믿을 수가 없어 책을 읽다가 말았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이제야 깨달았다. 생리전증후군은 거짓말이다. 생리를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생리하는 여자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생리를 소재로 한 영화 <피의 연대기>가 있었고, 생리를 그날이라 하지 않고 생리라 부르는 광고, 빨간 피가 등장하는 광고도 등장했다. 사회가 변하고 있으니, 복직했을때 내가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리대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꺼내서 나풀거리면서 들고 갈 수 있을까. 아직 완전히 자신이 생기진 않는다. 나도 더 변하고, 사회도 더 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