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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Apr 07. 2020

7년의 난임, 제일 싫었던 건

동정은 사양한다.

결혼 7년 만에 생긴 아이를 키우고 있다. 7년간 난임이었다는 말이다. 아이가 없는 기혼자로 살면서 많은 일들을 었다. 한번은 남편과 지리산 등산을 갔다. 대피소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합석을 하게 됐는데 거기서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안 낳아서 문제라며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묻는 말에 결혼한 지 6년 됐고, 아이가 없다고 대답했을 뿐인데. 우린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고 있는 거였는데. 이런 황당한 경우를 제외하면 난임인 나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동정이었다.    

  

7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가 아는 사람은 10년 만에 병원에 가서 아이가 생겼다’와 ‘마음을 내려놓으면 아이가 생긴다더라’였다. 나는 늘 묻는 말에 아이가 없다고 답을 했을 뿐인데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위로와 조언을 건냈다. 안 하니만 못한 위로와 수백 번은 더 들은 비법들. 그것보다 더 싫었던 것은 불쌍해서 어떡하느냐는 표정, 동정의 태도였다.    

  

물론 아이가 생기길 원해서 나름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대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괜찮았다. 즐겁게 잘 사는 사람을 왜 다들 불쌍하게 못 만들어 안달인지 화가 나기까지 했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진심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사정을 캐묻고 자신들 마음대로 동정하는 것이 싫었다.  

    

동정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동정 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싫다. 늘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그런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동정보다는 차라리 비난이 낫다. 비난에는 싸우면 되지만 동정은 그럴 수도 없다. 화를 낸다면 피해의식까지 있는 더 불쌍한 사람이 될 수 있기에 나를 불쌍히 여겨줘서 고맙다고 반응해야 한다.      



MBC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에서 학대 받는 태국 코끼리를 다룬 적이 있다. 평생 인간에게 학대 당한 코끼리를 보고 눈물 흘리는 유해진에게 코끼리 생태공원 설립자 차일러트 박사는 묻는다. “코끼리를 보고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다. 하지만 (코끼리를 구하기 위한) 땀은 누가 흘려줄 거냐." 코끼리를 보고 불쌍하다며 눈물 흘리다가 차일러트 박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물 한 번 흘리는 것으로 코끼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듯 돌아서면 다 잊고 지낼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코끼리의 학대가 부당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단지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선 안 된다. 값싼 동정을 던질 시간에 코끼리가 사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의 진심이 어떻든 동정은 나쁘다.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간다. 그를 한순간에 초라하게 만들고, 기분 나빠할 수도 없게 하는 동정은 윤리적이지 않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이에게는 동정이 아닌 공감이 필요하다.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는 태도 말고 불편해할 질문을 굳이 하지 않는 것,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다른 사람과의 이야깃거리로 삼지 않는 것, 배려가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 안 먹는다는 한약을 매번 보내준 시어머니보다 아이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꺼내다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눈물 흘린 부모님이 더 고마웠다. 고전소설 ‘사씨남정기’가 너무 싫어졌다는 내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며 그저 웃어준 지인이 고마웠다. 괜찮다는 나를 굳이 불러서 손을 꼭 잡고 눈물 그렁그렁하며 괜찮다고 위로한 사람보다 아무 말 없이 배란테스트기와 임신테스트기를 챙겨준 사람이 더 고마웠다.     


동생 지인의 아이가 ADHD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아이는 아빠도 없고 ADHD도 있어 불쌍하다고 하다는 동생의 말에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하지 않다고 했다. ‘ADHD는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병이고 가족의 형태는 다 다른데 뭐가 불쌍하냐고. 너의 아이가 불쌍하다는 말 들으면 좋겠냐’고 했다. ‘그렇긴 하지.’라며 동생은 수긍했다. 7년간 많은 동정들을 받았고 이제는 동정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모두 싫다.    

  

많은 사람들이 동정은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대놓고 마음껏 던져준다. 하지만 막상 받는 입장이 되어보면 기분이 씁쓸하다. 정말로 동정은 해도 괜찮은 걸까? 이제는 동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 어떤 동정도 사양한다. 그리고 함부로 다른 이의 인생이나 처지를 동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차일러트 박사의 말대로 눈물 흘리는 동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동정 말고 배려 깊은 공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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