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정,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를 읽고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그래서 난 사람을 싫어하는 것 뿐 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가족, 내가 좋아하는 몇의 친구와 지인들과만 진짜 마음을 나누며 지냈다.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갈등이나 언쟁이 생기면 그 사람과는 안 보면 그만이니까. 아무 상관없었다.
우연히 브런치에서 정문정 작가의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글을 읽었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말하는 방식을 모르겠다는 고민에 작가가 답을 한 글이다. 별 생각 없이 글을 읽다가 글을 다시 한번 더 읽었을 때 깨달았다.
이건 내 얘기라는 걸. 내가 바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하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어쩌면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몰라 스스로 벽을 만든 사람은 아닐까. 이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중학교 때 나를 아주 좋아하던 동성 친구가 있었다. 늘 따라다니며 좋아하는 티를 냈는데 나로선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얘가 너 되게 좋아하나봐. 좋겠다.”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아닌데. 난 그 애가 귀찮아.”라고 말했다. 도대체 난 왜 그랬을까?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종아리에 알이 있어서 치마를 못 입겠다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나는 위로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서 어떤 말을 찾아냈다. “치마 안 입고 바지만 입으면 되지.” 옆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화를 냈다. 왜 화를 내는지 그때도, 이후 한참 동안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말하기는 이런 식이었다. 이제 와서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니 그래도 내 옆에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울 뿐이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내가 더 많은 상처를 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늘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고, 오해를 샀고, 상처를 줬고, 받았다. 이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말을 많이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을 싫어하게 됐을 것이다.
부끄럼이 많고 내향적인 성격인데에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대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기회도 없었다. 칭찬, 격려, 위로를 배우지 못했고 그 대신 좋아도 싫어하는 척 말하기, 비난하기, 냉소하기, 속상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와 같은 것을 배웠다.
이런 말하기 방식은 대학 때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한 불편함이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어졌다. 사회생활은 말 그대로 사회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덜 힘들기 위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 훈련'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집단 상담에 참가해 보고, 시간 당 5만원을 주고 개인 상담도 받았다. 어떤 프로그램 덕분이었는지, 절실한 노력 덕분이었는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조금씩 나아졌고 직장을 다니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친구가 힘든 일이 있으면 그 친구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땐 혼자 있고 싶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배려해준 것이었다. 친구가 울면 옆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가 울 때 위로를 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지인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연락을 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누군가 울고 있으면 손을 잡아 주거나 안아준다. 여전히 위로, 격려와 같은 것들이 몹시 어색하지만 그 어색함을 이겨내려 노력한다.
여러 경험과 노력으로 예전에 비하면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관계 맺는 방법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갈등의 상황이 생기면 회피하거나 안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마음을 다 터놓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불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 꾹 참다가 결국은 한꺼번에 나쁜 방식으로 터트리게 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여러 갈등 상황에서 내리는 결론은 “역시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건 나와 맞지 않아.”이다. 그리고는 사람이 싫다고 방어벽을 치고 나만의 세계로 숨어 들어간다. 이게 지금까지 나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대응방식이었다.
정문정 작가의 글을 읽고 내가 타인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서툴렀는지를 깨달았다. 사람이 싫다는 나의 표현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제의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방안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결론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홀가분하다. 왠지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갈등도 잘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이건 지금의 기분뿐일지도 모른다. 몇 번의 호기 어린 시도 끝에 또다시 입을 다물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결심해 본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건 진짜 내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기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정문정 작가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신을 믿는 것만이 구원은 아니야. 내 상태를 솔직히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드는 사람이 인생에서 단 한명만 있어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
2021년은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 하고 더 많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