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가을이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그래도 가을이니까 가을을 타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돼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학비 지원받는 대학원을 신청해서 재학 중이고, 1월에는 영국으로 국외연수도 가게 됐다. 학교 업무도 학생들과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 한 달에 한 번 동료 선생님들과 하는 공부모임도 꾸준히 하고 있다. 부모님과 남편 모두 건강하고, 아이는 삼국지의 관우와 조조를 좋아하며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일이 잘 풀린다.
그런데 왜 난 행복하지 않은 걸까. 열심히 하면 할수록 왜 더 우울해지는 걸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작은 것에 행복하고 크게 웃는 일이 많았었는데 요즘은 머리로 행복하다고, 아니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웃는 일이 많이 줄었다. 별 거 아닌 거에 벌컥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갑자기 화를 내고 스스로 놀란다. 갱년기도 아닌데.
가까웠던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져서일까. 사주에서 대운이 올해부터 바뀌었는데 그래서일까.(나는 사주를 조금 안다.) 계속 책을 많이 못 읽었는데 그래서일까. 연말이라서 허무주의에 빠진 걸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욕심이 생겨서 불안한 걸까. 이것저것 이유를 생각해 봐도 모두 신통하지가 않다.
휴식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하기엔, 집안일은 남편이 훨씬 많이 하고.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주로 나만 한다. 내가 감히 일이 많아서라고 핑계를 댈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대부분은 못하고 살지만 누구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면서 지내는 편이라는 걸 안다.
형편없는 사람을 보고 싶어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었다. 발자크는 단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단점을 덮을 만큼 매력이 치명적인 사람이었다. 위로받고 싶었는데 위로가 안 됐다. 혹시 나를 설명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종결 욕구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종결 욕구 테스트가 나온다. 나는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닌 중간이 나왔다. 이것도 답이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덮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까’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을 할 때는 잊어버리지만 집에 오면 계속 이 질문을 붙들고 있다. 답이 나오지도 않는 질문을. 그리고 문득문득 혼자 되뇐다. ‘집에 가고 싶다.’
나의 집은 어디일까. 애써 가꾼 가정과 고향을 떠나서 찾아온 이곳이 내 집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 더는 도망갈 곳이 없는데.
작년 이맘때쯤은 <백 년의 고독>을 읽고 ‘외롭다’는 글을 썼었다. 그리고 올해는 ‘행복하지 않다.’는 글을 쓰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해진다. 인생이 꼭 행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순간 행복할 수야 없겠지만. 나는 작은 것에 크게 웃고, 매일 작은 기쁨들을 모으면서 사는 삶을 꿈꾼다. 무탈함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괜히 우울해지는 연말이 지나고 나면 다시 크게 웃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