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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길동 Aug 03. 2020

나는 투지맨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학생 시절 내 주변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았던 나는 친구들에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친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꽤나 신경을 썼다. 착하고 배려심이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고 소심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새 운동화를 사준다고 하면 좋기도 했지만, 그걸 신고 갔을 때 친구들의 반응을 생각하며 걱정을 했다. 그래서 지금 신고 있던 것과 똑같은 운동화를 엄마에게 사달라고 했고, 새로 산 신발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흙을 묻히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정도가 약해졌지만, 나의 소심함과 남을 의식하는 삶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남들과 잘 지내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착한 아들, 좋은 친구, 좋은 남편, 선한 이웃, 성실한 직장인을 지향하던 내가 전향을 한 것은 직장 생활 4년 차쯤이었다. 당시 강북구에 살면서 광화문에 있는 직장까지 자가용으로 출근을 했다. 어느 날 길이 막혀 출근시간을 넘겨 30분 정도 늦게 될 상황이었다. 평소 지각을 한 적이 없고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는 나는 큰일 났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는 핸드폰이 없어 사정을 회사에 알릴 수 없었다. 스트레스 게이지가 점점 올라가다가 정점에 다다른 순간, 근심은 람과 함께 라졌다.


"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텐데,  9시부터 스트레스 받자!" 그러다가 이내 곧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좀 늦을 수도 있지"


생각을 바꾸는 순간 오랫동안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이 풀어진 느낌이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전의 나와 구분 짓는 결정적 사건이 됐다. 해방감으로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볼륨을 크게 올렸다.     



그때부터 나는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했고, 상대에게 싫은 소리도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한마디 하고, 삼계탕과 설렁탕을 함께 하는 식당 주인에게 이 동네에 삼계탕 집이 없으니 삼계탕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하는 사람이 됐다. 상대와 의견 대립이 되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굽히지 않는다. 어쩌다 강의를 듣게 되면 앞줄에 앉아 거침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그때그때 물어보는 사람으로 변했다. 나 자신의 목소리를 과감히 내는 행동은 분명 과거의 내 모습이 아니다. 타고난 기질과 오랜 습관으로 만들어진 나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은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린 피터 드러커는 “한 사람의 가치관은 궁극적인 평가 기준이고  또한  궁극적인 평가 기준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흔히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그를 평가한다. 큰돈을 벌고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삶을 성공적인 삶으로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이 그가 살고자 했던 방향이 아니었다면, 그의 삶은 성공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을 수 있다. 그 사람의 성공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덤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매일 밤 자기 전 우리는 정말 놀랄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 중요하다."라고 했던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았다면, 길지 않은 생을 마친 그의 삶은 최고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가치관에 따 호불호와 그때그때 나의 느낌을 분명하게 표현하다 보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 지금의 나는 과거처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생기면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남들과 구별되는 모습이라서 좋다. 다만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의 삶의 모토는 투지(2G)맨이다. 즉, 극복(Geubok)하는 삶, 구별(Goobyoul)되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나를 알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의 가치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하는 일, 좋은 결과를 내는 나만의 방식, 나의 체력, 수면 시간, 생활 방식,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등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재료로 인생을 맛있게 요리해야 한다. 나답게 산다 것은 나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인생의 장애물을 넘어가며 만들어진 남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어느새 우리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까맣게 잊었다. 불운하게도 코로나 19는 가장 큰 별이 되어 빛을 발해야 할 아카데미 작품상을 잘 보이지 않는 멀리 있는 별로 만들어 버렸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했다. 내 안에 있는 우주를 끄집어낼 때 가장 창의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오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삶을 꿈꾼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하며 남들과는 다른 삶의 이야기가 있는 투지맨에 도전한다. 투지가 넘치는 나의 인생 이야기는 다음 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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