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같으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특별한 이야기가 됐다. 그러니까 거기엔 분명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2017년 여름, 파킨슨병으로 자주 넘어지면서 다리에 생긴 염증으로 입원 치료를 하고 있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 그 후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약 9개월 동안 몇몇 병원의 중환자실에 있었다. 가끔 눈을 뜨셨지만, 초점 없이 허공을 향했고 빛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꼬박꼬박 아버지가 있는 병원 중환자실에 면회를 갔고, 가끔 아내와 동행했다. 어느 날에 아내는 혼자되실 어머님 걱정에 아버님이 눈을 감지 못하는 거라며, 아버지의 귀에 대고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제가 잘 모실게요.''라고 했다. 아내 말을 들으셨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음 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를 마친 후에 나는 혼자되신 어머니 집에 자주 갔다. 아무래도 연로하시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상태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수시로 가서 잘 지내고 계시는지를 살피고, 어머니가 할 일을 대신 처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어머니 집을 주 2~3회씩 왔다 갔다 하였다.
아내는 걱정이 많은 편이다. 쉽게 피곤해하고, 다초점렌즈의 안경을 쓴 이후부터 밤 운전을 불편해하는 남편이 짧지 않은 거리를 빈번하게 오가고, 특히 밤 운전을 하는 것에 아내는 불안감을 가졌다. 결국, ‘이런 식으로 지내는 것은 무리다.’라고 판단하여,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식인 아들의 입장과는 달리 시월드에 대한 심적 부담이 있는 며느리로서 그렇게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내는 아버님과 한 약속, 그리고 남편에 대한 걱정을 더는 마음으로 어려운 결정을 하였다.
지금은 어머니, 나, 아내. 딸, 아들까지 다섯 식구가 한집에 살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노인학교에 가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고, 저녁엔 가족들과 그날 있었던 일을 나누며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다. 나는 어머니 집을 오가는 일에서 벗어났고, 어머니에 대한 걱정 없이 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 뒤에는 아내의 수고와 어려움이 있다. 매일 고민해야 하는 식단,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빨래 거리, 남편이 도와주기 어려운 목욕,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걷기, 주 1회 이상 병원에 모시고 가기를 하다보면 하루가 분주하다,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느라 아내의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하다.
“요즘 세상에 그런 며느리 없어.”라는 칭찬도 듣지만, 그런 말 안 들어도 좋으니, 편하게 살고 싶다는 아내는 늦은 저녁에 출출해하시는 어머님의 간식으로 생굴과 초고추장을 준비하고 있다. 아내는 가끔 말이 쎄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