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길동 Dec 26. 2022

바빠지는 건 괜찮아, 복잡해지는 건 안 돼

세월이 분다


크게 아픈 일을 겪고, 나이도 먹어서 인지 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을 고민하게 된다.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이고, 또 하나는 혹 갑자기 사망했을 때를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아직 젊은 사람은 이런 고민에 공감이 안 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여름 60세 전후의 사람들이 양평에서 모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남한강이 보이는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자리를 잡고 커피를 홀짝 거리며 나눈 이야기는 정년 이후의 삶이었다. 정년 이후에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분, 일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분, 최소한으로 일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하겠다는 분까지 각자 나름의 생각을 펼쳤다,


모임을 마치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정년 후의 삶에 대한 질문을 지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정년퇴직 이후에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물었다. 아직 계획이 없다는 사람. 자유롭게 여행하겠다는 사람. 봉사하며 살겠다는 사람, 형편상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하겠다는 사람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답변이 달랐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나의 미래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사실을 확인다.


첫 번째 고민은 정년 후에 육체적 힘이 남아 있는 10년을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여건이 되어도 일하지 않고 노는데 시간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때때로 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필요하지만 하루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  원칙으로 며칠 곰곰이 고민한 끝에 강의 도우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상에는 살면서 쌓아온 콘텐츠는 있지만 강의는 엄두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오랜 기간 강의를 해온 사람으로서 그들로부터 세상이 필요로 하는 교육 내용을 뽑아 수업을 설계하고, 수업 자료를 개발하여 그가 강의할 수 있도록 준비 과정을 도울 것이다. 실제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고객을 찾아내야 한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함께하면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산적 활동을 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강의를 하는 사람도 강의를 돕는 나도 모두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다만 너무 치열하게 할 일은 아니니까, 천천히 편안한 속도로 하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 고민은 만일 갑자기 사망했을 때 가족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오히려 더 철저히 해야 할 일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남은 사람에게 내가 써온 물건을 버리게 하는 것은 괜한 일이다. 버리는 물건보다 생기는 물 건이 많은 시대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의지를 가지고 매일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다음은 너무 많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다. 현대인들의 어려움은  기억해야 할 아이디와 비번호가 너무 않다는 이다. 그것 한 표로 정리는 것은 당장  나에게도 필요하고, 남은 사람이 큰 수고 없이 지나간 사람을 정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다. 끝으로 통장 관련 사항이나 지출해야 할 사항최소화하고 내용을 정리할 것이다. 그래야 이별의 아쉬움이 원망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여름이 끝날 무렵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 수학과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학교 졸업 축사가 화제가 됐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신의 안위에 머무르지 말고, 의미 있는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의 열매를 맺는 일이라는 점을 조했고, 인생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선 자신을 아쉬움 없이 만나기를 기원했다. 그의 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청년에게만 필요한 얘기지만,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노년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메시지다.


다만 노년의 삶은 젊은이와 삶과 같을 수 없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오랜 시간 쌓아온 능력과 경험으로 더 넓게 보고 너 멀리 볼 수 있는 지혜도 있다. 그러므로 노년에는 에너지를 덜 쓰고도 더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전략이 돼야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 구호는 '바빠지는 건 괜찮지만, 복잡해지는 건 안된다.'이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남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꺾기지 않는 마음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다. 물론 내가 지금 결정한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이 시점에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잘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야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