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지는 않지만 15년쯤 된 오래전 일이다. 지금이야 빈자리가 없으면 좌석버스를 탈 수 없지만, 그땐 서서 가는 사람이 많았다. 말이 좌석버스지 사림으로 꽉 차 있는 만원 버스였다. 당시 저녁 시간에 서울 광화문에서 용인 수지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코스라 안 밀리면 1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날은 추적추적 밤비가 내리고 퇴근 러시아워도 끝나지 않아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했고, 거기에 더해 내 앞에 앉아 있었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두 시간 내내 친구랑 큰 목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사실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일 일정을 보내느라 지친 상태로 서 있는 내가 짜증 났던 것은 젊은 여성이 ‘존나’를 모든 말에 붙여 쓰는 것이었다. ‘존나 짜증 났다.’ ‘존나 힘들었다.’ ‘존나 재미있었다.’라는 식이었다. 말을 하다 보면 한 두 번 욕도할 수 있겠지만 내내 ‘존나’라는 말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 생겼다. 그때 나는 존나를 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어도 나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스쳐가는 이야기됐다. 그렇지만 ‘존나’란 말에 대한 나의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나 스스로도 가끔 존나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누군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크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주일에 교회 식당에서 봉사를 마친 아내가 씩씩 거리며 하소연을 했다. 나이 많아 보이는 교회 식당 여성 직원이 너무 강압적으로 지시형 잔소리를 해 데는 통에 화가 많이 나고 결국 눈물까지 났다는 얘기다.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매우 화가 났어? 존나 빡쳤어? 매우 화가 났다는 표현으로는 도무지 부족하다고 말한 아내는 평소 '존나'를 욕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유는 존나 빡쳤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