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는 갑작스럽게 생긴 ‘봄날 음악회’ 티켓으로 내 친구 와이프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 갔다 왔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음악으로 구성된 공연을 보고 온 그날 밤, 아내는 즐거웠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에게 그곳에서의 감동을 풀어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는 데 눈물이 났어."
나는 '도대체 얼마나 멋진 음악이었기에 눈물이 났을 까?'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아이들의 중학생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다녔던 기독교 학교는 1 인 1 악기 원칙이 있었다. 당시 중 2, 중 1이었던 아이들은 악기를 연습하면서 과외 활동으로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다. 첫째인 딸은 플루트를 연주했고, 아들은 호른을 연주했다. 플루트 제2 연주자였던 딸은 제1 연주자가 되겠다고 열심을 냈고, 아들은 호른이 어렵다며 투덜거렸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는 한 해 동안 오케스트라 단원의어머니 대표를 맡았다. 어머니 대표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는 일이다, 다른 엄마들과 함께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연습 시간에 맞춰 간식을 준비했다. 때마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하려면 일주 내내 신경을 써야 했다.그것 외에 해야 할 일도 적지 않았다.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있었던 여름 수련회에서는 하루 3번의 간식을 공급해야 했다. 성남버스터미널에서 떡을 받아 나르고, 수박 10통을 준비하기도 했다.거기다가끔씩 아이들의 투닥거림과 사고도 수습했다.그렇게 1년을 마무리하는 정기연주회는 모든 사람의 수고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땐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 했나 몰라. 지금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아."
아내는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그렇게 뜨거웠던 젊은 엄마의 모습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그 시절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 미안하게도 나는 그해 늦은 가을, 평촌아트센터에서 했던 정기공연에서 사진을 찍은 기억만 있다.
아내는 봄날 음악회에서 익숙한 악기 소리와 멜로디에 취했고, 아이들을 챙기며 옆에서 들었던 오케스트라 음악의 기억이 자신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오래된 그 시절에 대한 아내의 잊었던 기억은 갑작스러운 음악회에서 깨어나 아내의 마음을 흔들었다. 힘들었던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나 보다. 아~ 옛날이여. 다시 올 수 없는 지난 시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