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옷 입고, 헤어 제품 바르고, 소지품 챙기고, 잡아채듯 가방을 들고 후다닥 현관문을 나선다. 잰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아뿔싸! 자동차 키가 없다. 짜증 낼 정신도 없이 집으로 뛰어가 자동차 키를 챙겨 나온다. 허겁지겁 시동을 걸고 차가 출발하면 휴~. 그제야 여유가 생긴다. 그것도 잠시, 이번엔 스마트폰이 없다. 영화처럼 핸들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한다.
도대체 정신이 없다. 준비해야 할 물건을 빠뜨리고, 해야 할 일을 깜박하기 일쑤다. 한참을 가다 빠뜨린 물건이 생각나 되돌아 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 얘기가 아니라 바쁜 현대를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단면이다.
핸드폰, 지갑, 열쇠 등 필요한 물건을 놓고 나오고, 약 먹는 시간 놓치고, 카드 결제일깜박하고, 선약을 기억하지 못해 일정 잡고. 오늘 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정도야 불편을 감수하거나 뒷수습을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서 실수가 있으면 일이 크게 꼬이거나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입사원서 접수 시간을 깜박해 좋은 기회를 놓친 사람도 있고, 학위논문심사비 납부 일자를 깜박해 6개월 후에나 심사를 받게 되는 사람도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실수를 하는 걸까? 그 이유는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이거나, 다른 생각을 하느라 깜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유는 그냥 생각이 안 나서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안이 필요하다. 해결책은 분명하고 간단하다.'체크리스트'이다.
흔히 체크리스트라고 하면 공중 화장실에 붙어있는 청소 점검 체크리스트처럼 물건이나 할 일을 챙기는 체크리스트 정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체크리스트는 단순히 물건을 챙기거나 할 일을 점검하는 것 그 이상이다. 체크리스트는 할 일을 도와준다. 체크리스트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수없이 많은 항목을 점검해야 하는 항공기 정비하는 일은 체크리스트 없이 불가능하다. 한 단계라도 빠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수술도 체크리스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에는 항목과 단계를 점검하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었지만 본질은 체크리스트이다.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의 항목이나 순서를 알려주는 고차적 사고 지원 체크리스트도 있다.
체크리스트는 직무상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넣지 않고도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직무수행 보조물(job aids)의 일종이다. 체크리스트는 업무수행 도구로써 일을 빠짐없이 완벽하게 마무리하는데 크게 기능한다, 체크리스트가 정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의 업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필요한 체크리스트는 많다. 집을 떠날 때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체크리스트, 일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체크리스트, 인생에 몇 번 없는 큰 행사를 치를 때 필요한 체크리스트 등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끄집어낼 수 없는 일에는 반드시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
체크리스트와 같은 정형화된 틀을 혐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유분방한 삶에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체크리스트이다. 사소한 것을 챙기지 못해 중요한 일이 엉망이 되어 버리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하면, 영영 자유로운 삶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잘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하루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막상 문제가 터지고 일상이 깨지면 고통이 크다. 그제야 평온한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체크리스트는 인공지능보다 더 맞춤형으로 나의 일상을 지켜 준다. 물론 체크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깜박하면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