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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길동 Nov 22. 2018

체크리스트 이야기

체크리스트 이야기 01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옷 입고, 헤어 제품 바르고, 소지품 챙기고, 잡아채듯 가방을 들고 후다닥 현관문을 나선다. 잰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아뿔싸! 자동차 키가 없다. 짜증 낼 정신도 없이 집으로 뛰어가 자동차 키를 챙겨 나온다. 허겁지겁 시동을 걸고 차가 출발하면 휴~. 그제야 여유가 생긴다. 그것도 잠시, 이번엔 스마트폰이 없다. 영화처럼 핸들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한다.



도대 정신이 없다. 준비해야 할 물건을 빠뜨리고, 해야 할 일을 깜박하기 일쑤다. 한참을 가다 빠뜨린 물건이 생각나 되돌아 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 얘기가 아니라 바쁜 현대를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단면이다.

핸드폰, 갑, 열쇠 필요한 물건을 놓고 나오고, 약 먹는 시간 놓치고, 카드 결제  깜박하고, 선약을 기억하지 못해 일 잡고. 오늘 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 정도야 불편을 감수하거나 뒷수습을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서 실수가 있으면 일이 크게 꼬이거나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입사 원서 접수 시간을 깜박해 좋은 기회를 놓친 사람도 있고, 학위논문 심사비 납부 일자를 깜박해 6개월  후에나 심사를 받게 되는 사람도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실수를 하는 걸까? 이유는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이거나, 다른 생각을 하느라 깜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유는 그냥 생각이 안 나서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안이 필요하다. 해결책은 분명하고 간단하다. '체크리스트'다.



흔히 체크리스트라고 하면 공중 화장실에 붙어있는 청소 점검 체크리스트처럼 물건이나 할 일을 챙기는 체크리스트 정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체크리스트는 단순히 물건을 챙기거나 할 일을 점검하는 것 그 이상이다. 체크리스트는 할 일을 도와준다. 체크리스트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수없이 많은 항목을 점검해야 하는 항공기 정비하는 일은 체크리스트 없이 불가능하다. 한 단계라도 빠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수술도 체크리스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에는 항목과 단계를 점검하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었지만 본질은 체크리스트이다.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의 항목이나 순서를 알려주는 고차적 사고 지원 체크리스트도 있다.

체크리스트는 직무상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넣지 않고도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직무수행 보조물(job aids)의 일종이다. 체크리스트는 업무수행 도구로써 일을 빠짐없이 완벽하게 마무리하는데 크게 기능한다, 체크리스트가 정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의 업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필요한 체크리스트는 많다. 집을 떠날 때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체크리스트, 일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체크리스트, 인생에 몇 번 없는 큰 행사를 치를 때 필요한 체크리스트 등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끄집어낼 수 없는 일에는 반드시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


체크리스트와 같은 정형화된 틀을 혐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유분방한 삶에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체크리스트이다. 사소한 것을 챙기지 못해 중요한 일이 엉망이 되어 버리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하면, 영영 자유로운 삶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잘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하루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막상 문제가 터지고 일상이 깨지면 고통이 크다.  그제야 평온한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체크리스트는 인공지능보다 더 맞춤형으로 나의 일상을 지켜 준다. 물론 체크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깜박하면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정신없이 바쁜 삶에서 나의 생활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 체크리스트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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