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 이야기 05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이런저런 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도 있고, 희망찬 새해를 기대하는 설렘도 있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그냥 맞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년 말 년 시에 세상을 북적이게 한다. 새해의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으로, 월악산 정상으로, 대한민국에서 해가 가장 일찍 뜬다는 포항으로 이동하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다.
이맘때 뉴스는 매년 똑같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촬영하는 헬리콥터에 손을 흔드는 장면은 빠짐이 없다. 나는 원래 복잡 거리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매해 반복되는 사람들의 해맞이 장면을 볼 때마다 최악의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밤을 꼬박 새우며 해맞이를 해야 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그렇게 몸을 지치게 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순조로운 새해의 출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 나만의 생각이고, 각자의 생각대로 살면 그만인 문제다.
이맘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을 완성하면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시스템 장착이다. 다행히 우리에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바람의 딸 한비야의 이야기다. 한비야는 남다른 송년회를 하고 있다. 다음은 한비야의 책 '1그람의 용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올해도 나는 특별한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와 단둘이 하는 송년회! 일 년 내내 사람들과 수 가쁘게 살아왔으니 마무리만큼은 혼자 차분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12월 마지막 주에는 아무 약속도 안 잡고 마지막 2~3일은 아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본적적인 나만의 송년회를 시작한다.
첫 번째 순서는 집안 정리다. 준비물은 커다란 박스, 행동지침은 미련 없이 신나게 버릴 것!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책이며 옷이며 각종 기념품이며 서류들을 한 아름 씩 가지고 나와 박스에 확 쏟아 넣으면 그렇게 속이 시원하고 개운할 수가 없다. 다음 순서는 컴퓨터 정리,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문서가 많이 깔려 있는 걸 보고 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그때마다 “하루 날 잡아서 싹 정리할 거예요"라고 하는데 그날이 바로 연말이다. 지금 바탕화면에 있는 새로 쓰는 책 원고, 필리핀 재난복구 관련 문건, 유엔 회의자료, 개인 사진 등도 며칠 내로 여러 개의 폴더 안에 말끔히 정리해 내 문서와 외장하드에 저장해 놓을 예정이다. 아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다. 그다음은 그해 일기를 모두 읽기다. 2~3권쯤 되는 일기장을 읽고 있으면 그해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 기쁨과 즐거움, 괴로움과 억울함, 뿌듯함과 아쉬움이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하다. 그리고 늘 가슴에 뭉클해진다. 올 한 해도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마음 상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한 사람들도 꼭 한두 명씩 떠오른다. 마지막 순서는 이들에게 감사하기와 용서 구하기이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 미안한 사람들에게 용서 구하기, 그리고 내가 용서할 사람들은 콩 크게 용서하고 털고 가기, 사실 이게 내 송년회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인데, 깔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 할 수 있는 비법이기도 하다.
한비야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독특하고 그만의 향기가 난다. 나는 그런 삶을 부러워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는데, 한비야의 송년회 매뉴얼이 그 비밀인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만의 송년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새해를 맞는 진지한 의식은 삶을 변화시키는 마법이 될 것이다.
한비야의 송년회 체크리스트
□ 집안 청소
- 준비물: 커다란 박스
- 지침: 미련 없이 신나게 버릴 것
□ 컴퓨터 정리
- 바탕화면의 문서 버리거나 제 위치로 이동시키기
□ 그해에 쓴 일기 모두 읽기
- 한 해를 돌아보기
□ 감사하기와 용서 구하기
-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
- 미안한 사람에게 용서 구하기
- 용서할 사람들 통 크게 용서하기
Tip. 한비야의 송년회 체크리스대로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