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길동 Aug 29. 2018

사라진 낭만 계절

세월이 분다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한양대학교 그룹 징검다리의 ‘여름’이라는 곡의 후렴구다. 그땐 그랬다. 여름은 낭만의 계절이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여름이 되면 산으로 갈 것인지, 바다로 갈 것인지 휴가 계획을 세우느라 마음이 바빴다. 바다에서는 해변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통기타 반주에 맞추어 합창을 했고, 산에서는 계곡 찬물에 담가 놓았던 수박을 잘라먹으며 밤새 세상살이에 관한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여름은 낭만의 계절이었다.



한낮의 찌는 더위에 지쳐 있던 중에 문뜩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여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여름을 낭만의 계절로 인식하고 있을까? 마침 여름 방학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대학생들에게 ‘여름’ 하면 낭만이 떠오르는지를 물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취업 준비를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더운 여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이제 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도대체 낭만이 가득했던 여름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점점 빨라지는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여름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어진 것도 그 이유일 것이고, 또한 우리나라의 여름이 더워도 너무 더워진 것도 그 이유 일 것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70~80년대에는 에어컨이 있는 집은 거의 없었고, 공공시설에도 에어컨은 없었다. 그나마 선풍기가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견딜 만했다. 지금은 학교에도 있고, 시내버스에도 있고, 에어컨이 없는 곳이 없지만 여름을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 개인의 인생에서 보면 몇십 년은 긴 세월이지만 지구의 역사로 보면 점 같은 시간인데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기후 변화의 원인을 상세히 알 수 있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는 시원함은 없다.


실제로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은 에어컨이다.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에어컨은 1902년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에 의해 발명되었다. 위대한 발명품이 많지만 에어컨이야 말로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에어컨은 더위와 관련된 질병 사망률을 40%까지 줄였다. 또한 더운 나라에도 생산적으로 일하며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는 지난 20세기 최대 발명품으로 에어컨을 꼽았다. 타임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에어콘 발명자 캐리어를 선정하기도 했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여름철에 장시간 집중적으로 일 할 수 있었을까?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여름 손님을 기꺼이 맞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에어컨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에어컨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저소득 가정일수록 작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기요금 비중이 커지고 누진 제도로 마음이 힘들다. 잠시 에어컨을 틀어 놓으면 마치 택시 요금이 올라갈 때마다 가슴이 떨리는 것 같은 심정이 된다. ‘보편적 복지가 맞는가? 선별적 복지가 맞는가?’를 논쟁하던 정치권의 싸움이 끝났는지 조용하다. 여름에 전기요금 걱정 없이 시원함을 누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 생산적인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이왕에 발전한 기술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여름이 새로운 낭만의 계절이 되길 기대해 본다.(2017년 8월)

매거진의 이전글 세월 참 빠르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