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다녀온 이들 - 보고 듣고 말하기 #3
1999년 새 밀레니엄이 목전일 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초등학생에게 있어 학교 앞 문방구는 미지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다 먹고 나면 혀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던 맥주 맛 사탕을 입에 물고, 나는 문방구 앞 매대에 놓인 손바닥만 한 책을 꼼꼼히 살펴보고는 했다. 어떨 때는 피카츄 꼬치나, 컵 떡볶이를 들고 볼 때도 있었지만. 책 대부분은 괴담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노스트라다무스의 이름이 있었다. 제목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은 온통 검은색에 표지에 노스트라다무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1999년 세계 종말은 온다.’식의 제목이었던 것 같다. 다른 책과 달리 그 책만은 도저히 훑어볼 수 없었다. 세계 종말이라니, 그것도 올해인 1999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심 종말이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다가오는 건지 보고 싶었다. 종말이라니, 세계가 멸망한다니. 그리고 그다음 날 깨끗하게 노스트라다무스를 잊고 친구들과 학교 뒤편 우유 창고에서 술래잡기하였다. 1999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2000년을 맞이했다. Y2K 같은 공포는 빠르게 휘발되었다.
남녀 아나운서가 상기된 얼굴로 카운트다운을 하던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밀레니엄은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라는 부류의 발언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IMF의 여파가 아직 한창이던 때였다. 종말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시점은 2004년 무렵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아침마다 명상을 시켰다. 어떨 때는 토요일 수업 대신 종일 명상만 할 때도 있었다. 꽤 선진적인 교육법을 시행한 선생님이 아닌지 싶을 수 있지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대순진리회 신자였다. 우리에게 개벽, 우주의 가을, 추수의 계절 같은 용어가 섞인 일장 연설을 종종 늘어놓던 분이었다. 내용인즉슨 이 세계는 곧 멸망하고 깨친 자들만이 새로 열리는 우주에서 기능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우주에 사는 거인이 망치를 들고 내려와 우리의 잡생각, 슬픈 기억, 기쁜 기억 모든 기억을 다 부수는 상상을 해보라고 강요했다. 처음 몇 번은 재미있었다. 눈을 감으면 우주가 펼쳐지고 기억들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광활한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금세 재미가 시들해졌다. 아이들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니까.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잠들었고, 몇몇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핸드폰 게임을 하고는 했다. 명상 수업은 졸업 직전까지 계속되었고,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아이도 명상으로 깨친 존재로서 거듭나지는 못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제 깨친 자가 되었을까. 모를 일이다.
2012년이 되자 마야 달력에는 2012년까지만 표기되어 있다는 종말론이 유행처럼 이야기되었다. 동명의 영화가 개봉할 정도였으니, 당시에 2012년 종말론을 정말 진지하게 믿는 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음모론과 종말론은 외피와 주어를 바꾼 채 끊임없이 다시금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을 소환하는 이도 분명하다. 우리 자신 말이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끊임없이 이 세계가 멸망하고 그곳이 도래하기를 기원한다. 누군가에게 이 세계는 신의 가르침을 배반한 타락한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자본주의자들의 탐욕이 극에 달한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동성애의 죄악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이 핵을 가지고 전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능력도 없는 이들이 장악한 공정하지 못한 사회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싫은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세계의 멸망을 바라는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가지고 있다. 그리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수백 년 전 한반도에서 그러한 염원은 주로 반란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정 도령이 일어나 이씨 왕조를 무너뜨린다는 도참설이 퍼지면서 곳곳에서 정 도령을 자처하는 이들이 일어났다. 일제 시절인 1937년에는 백백교라는 신흥 이단 종교의 2대 교주인 전용해는 세계는 곧 멸망하니 자신을 믿는 이들만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벽력사라는 이들을 내세워 자기 뜻에 반기를 든 이들 수백 명을 때려죽인 전용해는 암매장 사건으로 덜미를 잡혔고, 살인교사죄에 더해 일본제국 역시 세계가 멸망하면서 사라질 거라는 주장을 펼친 죄로 보안법 위반죄의 혐의도 받았다. 교주의 지시로 수백 명의 신도들이 살해당했지만, 용케 살생부에 빠진 수천의 신도들은 재판장에서도 백백교의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이들의 광기 어린 믿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광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광기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기인한 폐쇄적인 세계일 따름이다. 한 사람의 광기는 그 사회의 가장 추악한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약속된 장소에서」는 옴진리교에 깊이 빠져들었던 신도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1995년 3월 20일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몇몇 신도들에게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할 것을 지시한다. 국가적 공포감을 조성하여 일왕을 폐위시키고 본인이 절대자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고 매스컴은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러한 공식 서사를 뒤로하고, 그 너머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가 취재한 옴진리교 출신 사람들은 세간의 수군거림과 달리, 그리 미쳐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구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타인을 대할 때 친절하고 조심스러우며, 어떨 때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공통적인 패턴이 있기는 하다. 어릴 때부터 삶과 세계에 관한 의문이 있었거나 상실감과 외로움을 겪었고, 세계의 진리를 깨치고 싶다는 충동이 들고는 했다는 것. 그렇다고 하도 이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골수 유형의 범인(凡人)일 뿐이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이런 이들이 모여있는 옴진리교에서 어떻게 그런 끔찍한 테러를 저지를 수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들 역시 그리 말한다.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하던 사람들이 어찌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고, 다만 용의자들이 법정에서 한 증언을 보고 조금씩 정말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이다.
모든 종교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이 세계도, 그 틀에서 바라보면 더없이 평온하고 명확하다. 죄를 지은 자들은 벌을 받을 것이고, 선행을 베푼 이들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과 절망감은 신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들이다. 신흥종교가 폭발적인 위세로 성장하는 배경에는 위와 같은 가르침을 더욱 강조할뿐더러, 벌과 상을 줄 수 있는 신이 현세에 강림해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 신부님, 스님, 이맘은 모두 신의 뜻을 대리하는 자들이지만 아사하라 쇼코 같은 신흥종교의 교주는 그 자신이 신이고 뜻이니 말이다. 인터뷰 속 옴진리교 신도들은 하나같이 교주가 자신을 꿰뚫어 보았고, 고통을 타개할 해결책을 내려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하루키의 말처럼 조금의 조사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이들이 교주를 찬양하고 있을 때, 마음이 불안정하고 세계에 관해 본질적 의문을 떨쳐낼 수 없었던 예민한 감수성의 존재들은 차마 교주를 의심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의심하지 않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출가 전 수행을 하며 느꼈다는 신비적 체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터뷰를 한 모든 신도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였다고 옴진리교의 가르침에 신비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다만 신비한 경험을 한 이들만이 출가까지 감행한 것일 따름이다. 거기에 더해 교주는 그들에게 역할과 관계를 부여한다. 하나의 완벽한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사하라 쇼코는 신도들에게 불확실성이 제거된 세계를 제시하였다. 그곳에는 번뇌도 죄악도 없고 오직 수행과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단 하나의 길. 그 명확한 세계 바깥은 죄악의 세계이다. 교주를 살해하고 옴진리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암약하는 프리메이슨과 미국, 일본이 있고 아마겟돈이 다가와 정화될 세상이다. 그러니 사린 가스 테러는 죄악이 아니라, 존재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보시인 셈이다. 대다수 인터뷰이는 당신도 아사하라 쇼코가 시켰다면 테러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하루키의 물음에 자신이라면 교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한다. 그중에는 인간관계에 따른 것이기에 교주가 아니라 자신이 신뢰한 다른 누군가가 시켰다면 했을 수도 있다는 식의 답변도 있지만, 나라면 달랐을 수 있다는 그들의 장담은 얼마나 빈약한가. 이와쿠라 하루미(p206)의 인터뷰는 그래서 굉장히 특별하다. 교주에게 강압적인 성적 관계를 요구받고, 전기 충격으로 2년간의 기억을 잃었지만, 그에게는 삶에 대한 의지가 또렷이 존재한다. 출가자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라는 그의 평가는 그가 일반 통념에 가까운 수준의 상식을 지녔음을, 그래서 옴진리교 사건 이후에도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2019년 1월 1일 새벽, 도쿄 시부야구 다케시타 거리 번화가에서는 승용차 한 대가 거리의 행인을 무차별로 들이박은 사건이 발생했다. 8명의 시민이 상처를 입은 이 사건은 테러였다. 21세의 용의자가 자신의 범행 동기에 대해 “옴진리교 사형 집행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옴진리교 해체 이후 알레프 같은 후속 단체가 일본과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으므로 아사하라 쇼코는 사형 이후에도 현실적 위협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차량 테러를 벌인 용의자의 신원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지만 나이를 고려해봤을 때, 옴진리교 출가자들의 자녀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해는 구심점을 만들어준다. 아직도 아사하라 쇼코는 대안 세계의 구심점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