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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May 29. 2020

레트로 마니아

 레트로토피아, 사랑해마지 않는- 보고 듣고 말하기 #7

소설가 김영하의 말대로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 여행이 낭만의 대상으로 그려질 수 있는 까닭은 그곳에는 일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월급을 사수하기 위해 악전고투하지 않아도 되고, 껄끄러운 연락을 피해도 되기 때문이다. 레트로 열풍이 온 대중문화를 뒤덮었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헝클어진 장발을 한 청년이 시어 같은 노랫말을 부를 때, 자연스레 유재하·김광석·산울림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시리는 나올 때마다 대히트를 친다. 메인 여주인공의 남편 자리를 차지한 이가 두 명의 남주인공 중 어떤 이일지를 놓고 시청자로 하여금 갑론을박을 벌이게 한다. 로맨스의 전형적인 구도인 삼각관계에 당대 유행가가 OST로 끼어든다.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라니! 반칙에 가깝지 아니한가.


필름카메라, 타자기, 엘피, 카세트테이프, 두껍고 알 큰 뿔테가 우리 곁에 되돌아왔다. 레트로를 뛰어넘어 뉴트로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프로스펙스 같이 한때를 풍미했던 브랜드가 다시금 패션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고, 진로 소주와 뽀빠이는 80년대 풍의 디자인으로 탈바꿈하였다. 뉴트로라는 단어는 오늘날의 레트로 열풍 역시 시장이 만들어낸 환상 마케팅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히 청년들이다. ‘진로 이즈 백'이란 걸출한 카피를 보자. 무엇이 무엇에게 돌아왔는가. 언제나 환상은 되돌아온다. 머나먼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향수는 보다 강렬하고 보다 애틋하다. 낭만은 환상으로 작동하고, 환상은 결핍으로부터 유래한다. 오늘날 우리가 앓고 있는 환상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결핍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한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저서 「레트로 마니아」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젊은이는 노스탤지어를 느끼지 않아야 정상이다. 소중한 기억을 뒤로할 정도로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살지 못하여 추억할 대상이 없는 젊은이들은 이 레트로 열풍에서 무엇을 추억하는 것일까. 핵심은 뉴트로 마케팅은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물화하여, 그리고 압축하여, 소비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상처가 없는 시대, 회고하여도 오로지 밝고 명랑한 하이라이트만 반복 재생할 수 있는 시대. 과거는 물화되어 마음껏 팔아치울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이쯤에서 박민규 작가가 쓴 문장을 함께 읽어보자. 얼마 전 이슬아 씨가 쓴 칼럼 덕분에 오랜만에 떠오른 글이었다. 2010년, 단편소설 「아침의 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박민규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역시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라는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하게 내가 아는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1)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2)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그 나머지에겐 아차상을 주도록 하겠다. 물론 대부분의 명작들이 위의 경우에 해당된다. 나는 이미 소년을 건너왔고 노인이 되기까지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글쎄 결국 시간이라니까!). 앞으로의 항해는 그 소년과, 노인을 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영하 이십 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전 나는 저곳에 있었고 아마도 곧 저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굳이 따져보자면 본래 레트로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이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복고와 향수는 오래 산 이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그러나 시대적 특성에 따라 청년들도 복고에 열광하고는 한다. 젊은 육체의 그들은 이미 삶에 지쳐 조로하였기에. 「레트로 마니아」에서 사이먼 레이놀즈는 음악 인류학자  타마라 리빙스턴을 인용한다. 리빙스턴에 따르면 복고 음악은 일반적으로 “당대에 불만을 품은” 개인에게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해주는 중산층 현장이다. 불만 가득한 청년들은 흘러간 노래와 흘러간 물건을 수집한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흘러간 것들을 모아놓은 공간을 도장 깨기 하듯 다닌다. 최근 1년~2년 사이에 을지로의 부상이 이를 잘 나타낸다.


김은택·김정빈·금경조, 인스타그램 위치정보 데이터를 이용한 을지로 3·4가 지역 활성화의 실증분석, 서울도시연구 제20권 제2호 2019. 6., pp. 19~35

최근 서울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인스타그램 포스트 개수가 5개에 불과하던 을지로 지역은 2018년 한 해에만 1만개의 포스트 장소로 태그되었다. 이 비약적인 성장은 어느덧 세대가 공유하는 환상으로 성장하였다. 낡고 오래된 건물 사이에 자리한 을지로의 바와 카페들은 아날로그틱한 주변 환경을 적극 살린 것처럼 보인다. 어두침침한 조명과 오래전 다방에 있었을 것 같은 탁자와 의자. 손으로 대충 쓴 메뉴판과 시멘트 질감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까지. 그러나 ‘핫'한 을지로 3가 일대를 조금만 벗어나도 금방 본래 낡고 허름한 을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뉴트로 존과 그 바깥 지역의 을지로는 이제 거의 다른 지역이나 다름없다. 뉴트로 존의 을지로가 바깥과 다른 까닭은 그곳은 편집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무 상처 하나 없는, 단지 오래된 것들과 오래된 것이라고 여겨지는 감성이 결합되어 창출하는 이질감. “그땐 좋았지, 그때 물건은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잖아.” 같은 말을 하는 청년들의 탄생. 그러나 십년 뒤편 아이팟도 그때 쓰던 물건에는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겠다는 말을 듣겠지.


오늘날 대중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탈맥락화 되어 있다. 블랙핑크의 노랫말 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I Don’t Want To’의 가사가 더 잘 이해가 된다. ‘그대를 사랑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하고 있어요.’라니. 중요한 점은 블랙핑크의 노랫말을 전 세계 수십억 명이 같이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도 노랫말의 정확한 뜻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테다. 빌보드 차트와 오리곤 차트를 실시간으로 받아보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멜론 차트를 외국인들도 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평평한 세계 속에서 개성과 취향을 차별화 하기란 꽤나 어렵다. 아방가르드보다 레트로가르드가 보다 손쉬운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아방가르드와 레트로가르드에는 실제로 닮은 면이 있다.  둘 다 절대주의적이고 광신적이며 질문을 많이 한다. 현재에 실망한 그들은 모두 불가능한 것, 즉 손에 닿을 듯하다 멀어져버리는 신기루를 좇아 더욱 먼 미래로, 더욱 먼 과거로 나아간다. 아방가르드가 새로운 극단을 향해 진격해야 하듯, 레트로가르드는 더욱 먼 고대에 숨은 성배를 찾아 늘 헤매야 한다.


환상은 본래의 환상을 대체할 때야 진가를 발휘한다. 레트로라는 환상을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가. 적어도 무엇을 대체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인가. 순간이 기념비가 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자꾸만 반복하여 재생하고 있는가. 시간은 환상에 포섭되었다. 잃어버린 황금기, 살아보지 않은 과거, 때 묻지 않은 빈티지,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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