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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an 06. 2020

2019년 6월. 만남.

#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회사에서 스마트폰 OS를 마케팅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글로벌 시장의 99%를 나눠 갖는 아-주 안정된 시장이지만, 제가 입사하던 때에는 노키아의 심비안(!)이 내리막 길이긴 해도 여전히 점유율 1위였고, 그 뒤를 iOS와 안드로이드가 바짝 뒤쫓아가며, 윈도우 모바일과 블랙베리의 OS도 아직 ‘해 볼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OS 잘 만들고, 그 운영체제가 돌아갈 폰 잘 만들고, 거기서 돌아갈 앱 생태계 잘 구축하면(...), 우리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뭐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실현 가능성이 많이 낮은 이야기긴 했지만요.


아무튼 스마트폰 OS를 누구에게 홍보해야 할 것인가. 가까운 타겟은 OS에서 돌아갈 앱을 만들 개발자겠고, 먼 타겟은 OS 위에서 돌아가는 앱과 휴대폰을 쓸 사용자였는데요. 저희 팀은 주로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좀 더 쉽고 편하게 앱을 개발할 수 있게 지원하는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마케팅 활동들, 우군이 되어줄 개발자들을 찾는 업무를 했었습니다. 개발자를 모아놓고 키노트와 강의, 워크샵 같은 것들을 통해서 교육하고 홍보하는 오프라인 행사도 꽤 큰 비중을 차지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꽤 많은 프로그램들이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인터랙션을 줄이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그걸 만드는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모으는 행사를 한다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 까짓 게 뭐라고, 구글은 오프라인 모임을 늘려가고 있던데? 싶다가도, 그래도 접근성은 기술 문서 보고 웨비나 듣는 게 훨씬 좋을 텐데, 굳이 실재하는 어떤 장소로 ‘오게 하려면' 어떤 콘텐츠로 채워야 하나? 아니, 애초에 왜 들으러 오게 해야 되나? 그냥 홈페이지 파서 시간 맞춰서 웹으로 모이자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매번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알쏭달쏭 스마트 세상에서 face-to-face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정말로 뭘까’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만나야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 오프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세션이 끝난 후, 세상에서 제일 낯을 가릴 것 같은 개발자가 수줍게 본인의 랩탑을 들고 강연자에게 다가가거나, 자꾸 곁눈질로만 보는 참가자에게 부끄러움을 떨치고 나아가는 데모부스 운영자, ‘오 네가 담당자냐 잘 만났다 업데이트 언제 나오냐' 과격한 관심(?)을 전해주는 파트너들을 만날 때가 그랬습니다. 


돌아보니 서비스 기획이든 앱 개발이든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스크린과 모니터가 아닌 그 뒤의 ‘사람’으로부터 받는 피드백이 생각보다 중요하더군요. 플랫폼 제공자가 만나는 서비스 제공자도, 콘텐츠 제공자가 만나는 사용자도, 또 그 반대 방향으로도요. 특히 ‘일하는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는 어떤 피드백들은 ‘만남'으로만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의 동기 부여보다도, 더 크고 오래 강력하게 작용하는 그런 피드백이었죠. 


지난주 서울국제도서전의 부스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지켰습니다. 안전가옥을 알고 신간을 사려고 부스를 찾아오신 분부터 그냥 지나가다 쿤의 부름을(!) 듣고 부스에 들른 분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공업소들 사이에 낀 성수동 안전가옥의 한산한 라이브러리만 알던 분들에게, 혹은 어느 회차의 스토리 공모전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 창작자께, 그리고 ‘안전가옥이 책도 만드시는군요!’ 하는 분들로부터 저희도 알게 모르게, 마음에 위안과 힘을 얻었을 겁니다.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요. 도서전의 수많은 부스 중에 콕 찍어 안전가옥의 부스에 찾아와 주셨던 모든 분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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