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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an 06. 2020

2019년 7월. 어느 플레이스에 살고 있습니까.

#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TV 시리즈 <굿 플레이스> 시즌 1의 가장 중요한 스포일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를 뒤늦게 즐기고 있다. <굿 플레이스>의 세계에서는 한 사람이 살면서 저지른(?) 모든 행동을 선과 악으로 분류해서 선은 가점, 악은 감점으로 수치화한다. 그리고 죽고 나면 결산해서 순서를 매기고, 상위 점을 기록한 일부는 ‘굿 플레이스’, 나머지는 ‘배드 플레이스’로 보낸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를 끝낼 경우 814292.09점을 얻을 수 있다. 혈육의 생일을 기억하면 15.02점, 슬퍼하는 친구를 안아주면 4.98점, 사람과 대화하는 도중에 오는 문자를 무시하면 1094.07점을 얻을 수 있다. 반면 강을 오염시키면 4010.55점, 대량학살은 433115.25점 감점이다. 여자에게 “웃어봐"라고 하면 53.83점, 쓰레기 잡지를 사면 0.75점 감점이다.. 


시즌 1은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인권 운동가 대신 실수로 ‘굿 플레이스’에 왔다는 걸 알게 된 엘레노어가 ‘굿 플레이스’에 남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엘레노어는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생전 도덕 철학과 윤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던 치디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고, 같은 마을 주민인 타하니, 지안유와 엮이게 되면서 아슬아슬하게 ‘굿 플레이스'에서의 삶을 유지한다. 


그래서 ‘굿 플레이스’에 잘 남게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면 ‘배드 플레이스’로 끌려가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 대단한 반전이 있었다. 바로 엘레노어와 치디가 있는 그곳은 ‘굿 플레이스'가 아닌, 인간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고문하기 위해 고안한 ‘배드 플레이스’ 였다는 것. 생전에 정말 본인만 생각하고 살았던 엘레노어, 엄격함과 우유부단함으로 주위 사람을 괴롭혔던 치디, 자선을 위한 모금활동에 열성적이었지만 모든 것이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던 타하니, 아무 생각이 없는(...) 제이슨이 시키지 않아도 서로를 열심히 고문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도 정교한 ‘배드 플레이스’에 살고 있는 건가? 


지난 7월을 돌아보는 월간 안전가옥을 쓰려고 보니, 나에게 7월은 안전가옥 안팎으로 격동의 시간이었다. 엘레노어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있었고, 누군가와 서로를 고문하는 것 같은 시간도 있었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도 엄격하게 남들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시간도 있었다. 맞네. ‘배드 플레이스’ 완전 맞네. 


시즌 1 마지막 화에서 ‘배드 플레이스’의 설계자 마이클은 자신의 가장 큰 잘못은 이 넷을 뭉쳐놓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치디의 강의는 엘레노어에게 잘 먹혔고, 생각보다 엘레노어는 더 빠르게 좋은 사람으로 바뀌었고, 생각보다 제이슨과 타하니조차 서로를 돕기 위해 연대했다는 것. 현실의 ‘배드 플레이스’를 사는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과 주위의 도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연대. 그리고 강을 오염시켜서 점수를 깎아먹지 말고, 1회용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찬찬히 점수를 모으는 것. 


굿 플레이스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드 플레이스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재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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