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5월만 되면 마음이 붕 뜨는 편입니다. 제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쉬는 날도 많고, 날씨도 좋고. 마음이 들뜰 이유가 많은 달이거든요. 이번 5월은 제 생일은 그대로였지만, 쉬는 날은 별로 없고, 날씨도 이상하고? 일은 바빴던 달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붕 뜬 마음으로 한 달을 보내고 돌아보니, 어째 머리에 영화 <기생충> 하나만 남아 버렸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생충>의 이런저런 디테일과 상징들을 맞히는 재미도 있었지만, 보고 나서 제 생각이 튄 곳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 '계획' 이었습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려는 기우의 가족에게 계획은 유일한 무기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기택과 기우는 계획을 잘 세우면,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래에 기택은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같은 소리 나 하고, 더 깊은 지하로 떨어집니다.
만약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웠더라면 결과가 나았을까요? 아니면 정말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일까요?
올해 초에 마케팅 테이블의 1년 치 업무 계획을 짰었습니다. 하도 들여다봤더니 벌써 1년을 다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지치는 마음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내 인생 계획은 없으면서 업무 계획은 잘도 짜고 있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아 이거 말고 제 인생 한 판이나 짤까 봐요 하는 저의 말에 모 운영멤버(ㅇㅇㅁ)는 단호하게, 그럼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라고 말했어요. 순간 ‘계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에 또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업무를 할 때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계획이 있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획 없이 임기응변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저는 2박 3일 한 번의 행사를 위해 1년을 준비한 적도 있고, 한 개의 제품을 출시하려고 몇 천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과 과정이 충실하면 무조건 결과가 완벽하냐, 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어디서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최소한 열심히 계획하고 일정대로 진행해두면 갑작스러운 변경이나 외부 요인에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요.
그렇다고 ‘계획'의 든든함에 속아 계획만 세우는 ‘talker’가 되거나, 계획과 체크리스트의 든든함만을 믿는 컨트롤 프릭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업무가 아닌 삶에서는 더욱 그렇죠. 내가 타고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바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 매일의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생각하면 내가 ‘계획'할 수 없는 요인이 삶에는 너무 많으니까요. 오히려 계획이 틀어졌을 때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는, 이른 바 ‘회복 탄력성'을 가꾸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아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의 소중함도 기억하면서 살아야겠네요.
자,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살아야 ‘성공'하는 건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서른몇 번째 생일을 보내며, 수많은 질문을 안고 클레어, 첫째 딸, 연무장길 마케터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