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어 Jan 06. 2020

2019년 5월. 클레어 첫째 딸 연무장길 마케터.

#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5월만 되면 마음이 붕 뜨는 편입니다. 제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쉬는 날도 많고, 날씨도 좋고. 마음이 들뜰 이유가 많은 달이거든요. 이번 5월은 제 생일은 그대로였지만, 쉬는 날은 별로 없고, 날씨도 이상하고? 일은 바빴던 달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붕 뜬 마음으로 한 달을 보내고 돌아보니, 어째 머리에 영화 <기생충> 하나만 남아 버렸습니다. 


외쳐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생충>의 이런저런 디테일과 상징들을 맞히는 재미도 있었지만, 보고 나서 제 생각이 튄 곳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 '계획' 이었습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려는 기우의 가족에게 계획은 유일한 무기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기택과 기우는 계획을 잘 세우면,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래에 기택은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같은 소리 나 하고, 더 깊은 지하로 떨어집니다. 


만약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웠더라면 결과가 나았을까요? 아니면 정말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일까요? 


올해 초에 마케팅 테이블의 1년 치 업무 계획을 짰었습니다. 하도 들여다봤더니 벌써 1년을 다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지치는 마음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내 인생 계획은 없으면서 업무 계획은 잘도 짜고 있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아 이거 말고 제 인생 한 판이나 짤까 봐요 하는 저의 말에 모 운영멤버(ㅇㅇㅁ)는 단호하게, 그럼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라고 말했어요. 순간 ‘계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에 또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업무를 할 때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계획이 있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획 없이 임기응변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저는 2박 3일 한 번의 행사를 위해 1년을 준비한 적도 있고, 한 개의 제품을 출시하려고 몇 천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과 과정이 충실하면 무조건 결과가 완벽하냐, 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어디서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최소한 열심히 계획하고 일정대로 진행해두면 갑작스러운 변경이나 외부 요인에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요. 


그렇다고 ‘계획'의 든든함에 속아 계획만 세우는 ‘talker’가 되거나, 계획과 체크리스트의 든든함만을 믿는 컨트롤 프릭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업무가 아닌 삶에서는 더욱 그렇죠. 내가 타고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바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 매일의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생각하면 내가 ‘계획'할 수 없는 요인이 삶에는 너무 많으니까요. 오히려 계획이 틀어졌을 때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는, 이른 바 ‘회복 탄력성'을 가꾸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아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의 소중함도 기억하면서 살아야겠네요.


자,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살아야 ‘성공'하는 건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서른몇 번째 생일을 보내며, 수많은 질문을 안고 클레어, 첫째 딸, 연무장길 마케터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4월. 침묵의 나선이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