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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Feb 08. 2020

2019년 12월. 2019년의 이야기들

#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연말이 되면 하는 일 중에 "올해의 땡땡땡 정리하기"가 있다. 나는 일기도 잘 안 쓰고, 꾸준히 일상을 기록하는 건 잘 못하는데 연말에는 꼭 1년 동안 봤던 영화나 책이나, 맛있게 먹었던 거나 뭐든 정리를 해야 한 해를 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마침 친구들도 이런 걸 좋아해서 같이 적다보니 서로 돌려보는 재미도 있고 해서 해마다 꽤 열심히 정리를 했다. 매년 같은 문항으로 정리를 하지는 않고, 어느 해에는 재미없었던 영화를 따로 정리하기도 했고 어느 해는 연극, 뮤지컬만 가지고도 한참 정리를 했었다. 


2019년 올해의 땡땡땡도 잘 정리를 했고, 월간 안전가옥에는 ‘기억에 남는 독서/시청 경험'을 기준으로 한 달에 한 편의 이야기씩 골라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올해의 땡땡땡은 어떤 걸 보고 좋았거나 나빴던 감상을 가지고 정리했다면 그 이야기를 볼 때 어떻게 봤는지를 되돌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아무튼 정리하고 보니 도저히 하나를 고를 수가 없었던 달도 있어서 총 14편이 되었다. 쭉 읽어보면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매달 어떤 이야기를 봤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시면 재미있지 않을까! (찡긋)


*언급된 작품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공정함(?)을 위해 안전가옥의 책들은 제외..*



1월 - SKY캐슬


그 시절 뜨거웠던 황우주 석방 운동을 기억하시나요..? SKY캐슬은 18년 12월에 방영을 시작했지만, 나는 15, 16화가 방송되는 날 전날 밤에 넷플릭스로 1화부터 14화까지를 몰아서 보고 15화부터 정주행 행렬에 끼어들었다. (참고로 15화는 혜나가 우주 생일파티에 갔다가 추락 사고를 당한, 이야기가 민사에서 형사로 넘어가는 지점) 


SKY캐슬에서 파생한 온갖 밈들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급히 몰아보는 게 하나도 괴롭지 않았던 이야기라 눈은 좀 아프지만 즐거웠었다. 당시 TV 방영시간이 안전가옥 근무 시간이라.. 넷플릭스에 뜨기 전까지 스포 당하지 않으려고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해야 했던 밤도 기억이 난다. 



2월 -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보게 된 계기는 관심 있는 배우 에이사 버터필드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었는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까 내가 정말 딱 좋아하는 요소들이 모여 있었다. 1) 영어덜트+코미디, 2) 매력적인 배우들, 3) 줄거리에 없는 캐릭터들의 일상이 궁금해지는 이야기. 나는 보통 좋다 싶으면 멈추지를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끝을 내는 편인데, 너무너무 더 보고 싶어서 한 달 내내 아끼고 아껴 보았다. 아껴보는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에이사를 비롯한 배우들을 데리고 꽤 많은 마케팅 클립들을 찍어줘서 잘 버틸 수 있었다. 1월 17일 시즌 2 공개 예정. 


그 중 하나인 에이사, 엠마, 슈티의 미국 남부 로드트립



3월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 랍스터, 킬링 디어를 잇는 작품이었던 더 페이버릿은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기대하고 기다려온 영화였다. 이 감독의 영화들을 볼 때 모든 장면과 대사, 행동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마치 봉준호 감독 영화들을 볼 때와 같은), 특히 더 페이버릿에서는 모든 인물이 가진 서로 다른 욕망을 우아하게 얽어서 보여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차분히 돌아버린(?) 캐릭터들도 엄청나게 매력적. (적다 보니 2018년의 원픽이었던 PTA의 <팬텀 스레드>도 생각나고..)


앤 여왕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먼의 2019년 오스카 여우주연상 Acceptance Speech



4월 - 옥상에서 만나요


2018년 말에 출간된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집.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안전가옥에 조인하기 전에는 정세랑 작가님을 잘 몰랐다. 장르 소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문단을 뽀개고(!) 이제는 경계를 넘나드신다, 라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휴가 길에 책을 챙겨 갔었다. 숙소의 수영장 옆 베드에 누워서 <웨딩 드레스 44>를 읽었는데, 읽고 있는 이야기와 눈앞의 현실의 거리감 때문에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던 게 기억이 난다. 서울로 돌아와 연희동 책바에서 독한 술을 마시면서 다시 읽었는데, 아주 다른 이야기처럼 읽혔다. 



5월 - 산티아고, 이탈리아


5월엔 전주국제영화제에 갔었다. 친구와 시간표를 맞추다가 별 기대 없이 고른 영화였는데, 알고 보니 난니 모레티 감독의 다큐멘터리였다. 영화는 1970년대 칠레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아옌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피노체트의 쿠데타, 군부정권 치하에서 탄압받고 죽어 가는 민간인들, 그 가운데 수백 명의 망명을 도운 이탈리아 대사관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나는 칠레의 근현대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근현대사와 엄청 닮아있었다. 그래서 영화 중간에 감독이 “난 중립적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뇌리에 박혀버렸고, 전일갑오로 걸어가는 길 내내 친구에게 횡설수설 이영화너무조와!!를 외쳤다. 


트레일러 보기



6월 - 기생충


개봉 당일 봤으니까 사실은 5월이지만, 6월 내내 기생충 생각만 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왓챠에 남겼던 평을 찾아봤다.


 - “보고 나오는 길 그간 봉준호 감독 영화에 내가 준 평점들을 확인했다. 봉준호 감독 영화끼리 비교해야지, 하는 마음이 든 걸 보면 봉준호 자체가 장르가 되었단 말이 공감이 간다. 다들 좋아하는 살추 괴물 마더 말고도 설국열차와 옥자를 너무 좋아했는데, 기생충은 그들과 정신은 비슷하고 모습과 디테일이 그 이상이어서.. 칭찬 드리고 싶다 참내 내가 머라구 님 채고야 앞으로 만수무강해 엉엉”  


2019 토론토영화제의 봉준호 감독 인터뷰



7월 - 기묘한 이야기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기묘한 이야기를 2019년에 보기 시작한 ‘늦덕'으로서 새로운 시즌은 누구보다 빨리 보겠다는 일념으로 릴리즈된 그 날 밤을 새워서 모든 편을 다 봤다. 온전히 재미있게 보려고 홍대 팝업도 다녀오고, 시즌 1,2도 다시 복습하면서 손꼽아 기다린 기억이 난다. 다 보고 난 후부터 몇 달 간은 스티브를 연기한 배우 조 키어리의 팬걸로 살았다..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사고 읽은 첫 번째 책,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 읽은 전자책이다. 모든 단편에 녹아있는 ‘진보’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관점이 느껴져서 주위 친구들에게 엄청 소개를 하고 다녔었다.



8월 - 굿 플레이스


한창 “내가 찜한 콘텐츠" 리스트를 줄이려고 노력하던 시점이어서, 오랫동안 리스트에 자리를 잡았던 굿 플레이스를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2019년에 본 이야기 중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8월에 쓴 월간 안전가옥과 팟캐스트 출연분으로 갈음.


[7월] 어느 플레이스에 살고 있습니까 by Clare 

그저 재닛 얘기만 하다 끝나버린 팟캐스트 [짜샤팟]



9월 - 보잭 홀스맨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전 운영 멤버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엔 우울한 블랙 코미디에 적응을 못해서 그만 보았다가, 다시 보았는데 그러다 끝까지 봤다. 9월에 꽤 바쁜 일이 많았는데도 시청 기록을 보니 보름 정도에 걸쳐 매일 한 편씩 꼬박꼬박 보았더라. 우울하고, 의미가 있는, 그런데 씁쓸하게 재미있는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안 보면 안 될 작품. (난 그런 사람도 아닌데 너무 좋았으니까)


이제 시작 부분만 들어도 심장 쿵 떨어지는 보잭 홀스맨의 오프닝




10월 - 결혼 이야기, 마티아스와 막심


10월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었다. 심너울 작가님의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북투필름에도 참가하고 수상의 기쁨도 누렸는데, 출장 일정이 끝나고 좀 더 머무르면서 영화도 봤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정밀하게 구성한 인물과 에피소드가 촘촘히 들어차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결혼과 이혼 둘 다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건 나의 모습, 저건 누군가의 모습 하면서 한껏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 <하트비트>에서 이어져 오는 자전적인 사랑 이야기가 좀 더 깊고, 쓰게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어서 좋았다. 낮에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해리 스타일스의 신곡 <Lights Up>이 막 공개되었는데, 영화와 꽤 어울리는 지점이 있어서 영전 한 가운데에 서서 뮤직 비디오를 열심히 봤던 기억. 


I am not ever going back �



11월 - 숨 (+펭수)


일상이 좀 느긋해졌던 시기여서 읽다 말았던 책들을 많이 다시 펴 보았다. 그 중 테드 창의 <숨>은 연초에 안전가옥 콘텐츠 스터디 멤버들이 읽을 때 추천을 받았다가, 괜한 SF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미뤄뒀던 책.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매혹적이었고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벅찬 생각이 가라앉도록 잠깐 책을 덮고 눈을 감아야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책도 읽었지만.. 사실 11월은 펭수를 보기 시작한 달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유투브 메인 추천 영상이 모두 펭수였던 날이 기억난다. 남극에서 온 열 살 펭뚜.. 행복하렴..



12월 - 미란다 (+루시퍼)


연말엔 시간이 많아서 이런 저런 드라마들을 보다가,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어 따수운 마음으로 미란다 스페셜 에피소드를 봤다. 서른 다섯 미란다 언니의 성장기(!)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 연말. 


*아무튼 이렇게 내내 미란다를 보다가.. 아 미란다 너무 조와 >> 개뤼도 너무 좋아 >> 개뤼는 요즘 뭐하시나(?) 하다가 루시퍼를 시작하게 됐다. 아기 예수 탄생을 앞두고 지옥을 지키던 천사 루시퍼가 휴가를 나와서 LA에 클럽을 차리고 살면서 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즐기자니 조금은 불경스러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잘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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