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
비록 혈혈단신으로 덩그러니 태어난 우리지만 다행이나마(?) '사랑'이라는 감정 작용을 통해 교류 그 이상의 행위들을 주고받는다. (심지어 '사랑'의 영향은 법에게까지 미처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됨을 공증하는 ‘결혼’이라는 제도까지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명제 아래 우리는 어떤 일이든 척척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에너지를 얻는다. (NASA도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별 몇 개쯤은 가볍게 딸 수 있는 것이 우리다. 짐짓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허가한 일종의 '프리패스'쯤 되는가 보다. 하지만 이러한 몰이해는 먼저 한 가지의 전제를 필요로 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존재가 온전히 나만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적으로 홀로인 인류가 이 '분리됨'을 해결하고자 과거부터 부족 단위의 삶을 영위했던 것처럼,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 역시 분리됨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혼자되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곧 서로가 서로의 소유라는 암묵적 약속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사랑의 목적의 우선순위는 대상에 대한 집착이 되기 시작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강화된다. 사랑하는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만을 바라보는 당신이 되길' 우리는 늘 생각한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뻔뻔하게도) 곁에 있어줌에 고마워해야 할 망정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닌 자신에게 길들여진 어떤 존재이길 바라게 된다. 어느덧 사랑의 투명함은 강요의 탈을 쓰고 그 탁함을 드러낸 채 서서히 관계를 병들게 만든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닌 동시에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영원할 것이라 자신했던 모든 연인들은 모두 이 단계의 언저리 즈음에서 마치 겨울바람 같은 날카로움만을 품은 채 아득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들 갔다. 평소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쿨'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울고불고 진상을 떨어가며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내 맘 같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보통의 인간이다.
스파이크 존즈의 신작 <her> 역시 이러한 사랑의 기본적 역학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러티브를 이끄는 캐릭터는 주인공 테오도르와 그의 부인 케서린, 그리고 그가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대상인 가상 OS 사만다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컴퓨터 간의 사랑. 이들의 관계는 사랑의 ‘소유’라는 문제에 대해 보다 심플하게 접근을 시도한다. 어렸을 적부터 서로를 지켜봐 왔던 테오도르와 케서린은 오히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이혼까지 이르게 된 커플이다. 그들은 너무 가깝기에 동시에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해결하려는 대신(사랑하기에) 무마시키기에 바빴고, 그것은 결국 사랑하지만 헤어져야만 하는 관계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그는 상대방이 조금 더 자신을 인정해주는 온전한 내 ‘것’이 되길 바랬지만 현실과 이상은 괴리감만을 남겼다. 이때 그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온 것이 가상 OS인 사만다다. 그녀는 비록 실제 하지 않는 OS이지만, 누구보다 테오도르의 마음을 알아주는 여자 친구다. 케서린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은 테오도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사만다에게 빠져들었고, (허무맹랑함을 무릅쓰고) 실체 없는 그녀와 사랑의 교감마저 나누게 되었지만 결국엔 여기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나뿐만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상냥한 OS. 모르는 사람까지 동원할 정도로 자신과의 사랑을 이어가고 싶다는 사만다를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랑 역시 '나에게만' 일 수 없다는 그녀의 본질적 한계에 부딪힘이 그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어쩌면 제일 큰 문제였던) 육체의 존재 유무까지 넘어선 사랑을 마음 먹지만, 그녀 역시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자각과 동시에 그 위대한 사랑의 끝을 맺게 되었다.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비단 육체의 문제에서 완성되는 것인가, 상대방만을 바라보기로 완성되는 것인가. 물음에 대한 답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완성될 테지만, 사실 그 대답이 쉬울 리가 없으며 완벽한 답안 또한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인간의 소유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길들여진 타인이지, 존재 그 자체의 인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토록 찌질한 우리들. 기계는 A/S라도 되지, 참 복잡하게 사는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