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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온 May 03. 2020

스타킹 왜 신으세요?

21세기 스타킹의 모순적인 존재 이유



봄맞이 옷장 정리를 하는데, 지난 겨울에 사놓은 스타킹이 10개나 나왔다.

어디선가 세일을 하는걸 보고 봄에 많이 신겠다 싶어 대량으로 사놨던 것이다. 20데니아 스타킹은 거의 일회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쉽게 올이 나가니까. 

20데니아. 스타킹의 두께는 데니아라는 단위로 측정된다. 섬유 굵기를 측정하는 단위로, 숫자가 작을 수록 얇아진다. 겨울용 두꺼운 스타킹은 150데니아, 이런 한 봄에 신는 얇디 얇은 스타킹은 주로 20데니아.


새 스타킹을 찾은 기념으로 오랜만에 스커트를 입고, 스타킹을 신었다. 봄이 왔구나 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스타킹은 불편해졌다. 올이 나갈까 조심조심하게 되는 건 물론이고, 허리 부분을 조이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 문득, 스타킹을 왜 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겨울 150데니아, 혹은 기모 스타킹은 '보온'이라는 타당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기모 바지를 입으면 더 따뜻하고 편안하겠지.)

그런데 봄에, 슬쩍 반팔을 꺼내 입어도 춥지 않은 날에, 나는 왜 스타킹을 신었을까?

예전에는 그냥 뭐 하나라도 신으면 좀 더 따뜻하겠지 하고 대충 생각했었는데, 과연 살갗을 투명하게 비추는 이 스타킹이 어떤 보온의 역할을 하기는 하는건가? 아니면 내 피부와 비슷한 '살구색' 스타킹에 어떤 다른 기능이 있을까?


그래서 찾아보았다. 위키백과, 스타킹 검색.

<장점과 단점> 스타킹은 다리의 노출에 있어서 미학적이다.

이거 대체 누가 쓴거야? 그래도 분노를 가라앉히고 좀 더 읽어본다. 

'피부가 살짝 비치는 (see through) 스타킹은 1920년대에 개발 되어 실크를 대체하면서 건강미를 완전히 감추지 않는다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중략) 잠깐 동안 이지만은 스타킹은 프랑스에서 성을 판매하는 사회적 표식으로 사용되었다.' 

아, '미학'이 이런 뜻이구나. 헛웃음이 난다.

그리고 2000년대초, 서서히 인기를 잃어가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오피스룩이 좀 더 편해져, 스커트와 블라우스 대신 셔츠와 수트를 입기 시작했다. 2. 패니큐어와 태닝 스프레이 등과 함께 맨다리가 트렌드가 되었다. 3. 여성들이 스타킹이 불편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니까 스타킹이라는 것은 사실은 별로 쓸모도 없고 불편한데, 그냥 유행이고, 여성을 좀 더 '단정'하거나 '섹시'하게 보여준다는 모순적인 이유로 이렇게 오랬동안 여자들의 옷장 필수템이 되었던 것이다.


이거 참. 사놓은 스타킹을 버릴 수도 없고. 

쓸데없이 멀쩡한 걸 잘 못버리는 나는, 어느 맨 다리는 아무래도 쌀쌀한 기분이 드는 그런 날 꺼내 신고는 이게 아주 조금이라도 보온을 해줄거라고 믿는 척을 할 것이다. 혹은 맨다리를 보이는 것이 예의 없다고 여겨질 어떤 곳에 가면서 꺼내신고는 불평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스타킹을 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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