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함에 앞서 나는 사랑으로 결혼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밝힌다.
나는 혼자 오래 살았다. 처음 나의 자취집은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집이었다. 방한칸보다 작은 집을 우리는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말 내 몸 하나 뉘이면 꽉 차는 집을 빌릴 수 있던 건 큰 창 때문이었다. 새로 지은 큰 창이 있는 방은 방을 집처럼 착각하게 하는 마법을 보여줬다. 물론 그 마법은 이사하고 한달이 되지 않아 깨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싫어 카페에 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페에 가 적적함을 달래고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집에서는 잠만 잤다.
두번째 집은 그에 세배정도 되지만 여전히 방 한칸인 빌라였다. 대로변에서 한 블럭을 들어오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4-5층 빌라 중 그나마 앞 집과의 거리가 먼, 5층에 있는 방을 구했다. 이사 전날 혼자 그 집을 청소하며 이 집은 현관에서 벽까지 5미터가 넘는다며 신나했다. 나는 방 한 가운데 커다란 책상을 두었다. 1500*800, 엄마는 방만한 책상이라고 놀렸지만 나는 그 책상에서 밥도 차려먹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그림도 그렸다. 그 집에 살았던 마지막 1년, 나는 그 책상 앞에 밤이 깊도록 앉아 프로듀스101을 틀어놓고 꿈을 향해 달리는 10대 소녀들과 함께 내 꿈을 향해 달렸다.
밀라노에서는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그 집의 소유주인 안나 할머니는 백발의 멋진 여성으로 화장실이 딸린 가장 큰 방을 썼다. 나는 두번째로 큰 방을 쓰며 옆 방에 사는 성악하는 언니와 화장실을 공유했다. 우리는 부엌과 거실을 쓸 수 있게 허락받았지만, 나는 부엌에만 잠깐 잠깐 머무를 뿐 내내 내 방에 있거나 집 밖에 있었다. 우리는 같이 살았지만 나는 혼자 산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오래도록 나는 내 집에서 혼자였다.
누군가와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내가 다시 내 집에서 스스로를 찾기까지 대략 1년이 걸렸다. 그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나 없었다. 그가 없는 시간에는 그가 남긴 흔적들이 거슬렸고, 그가 있는 시간에는 그가 신경 쓰였다. 나는 내가 무신경한 사람인줄 알았다. 어제 산 책상에 물감이 묻어도 그러려니, 치약을 앞으로 짜든 뒤로 짜든 그렇게 짜는 줄도 모르는 사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이상하게 그가 침대에 있으면 침대에 같이 눕고 싶고, 그가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침대에서 그 없이 쉬고 싶었다. 그와 함께 하는 공간에서 내가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1년이 걸렸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지 않았나. 자기만의 방이 우리는 필요하다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