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는 바다에 3번을 갔다. 동해바다까지는 우리집에서 차가 막히지 않는 새벽에 출발해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는 대충 짐을 싸서 새벽 5시에 일어나 훌쩍 바다로 떠난다. 준비한 파라솔과 돗자리를 펼쳐 두고, 바다에 뛰어든다. 수영을 배우기 전에는 바다는 바라보는 공간에 가까웠다. 풍경으로써의 바다도 즐겼지만, 수영을 하게 된 후 온 몸으로 느끼는 바다는 훨씬 재밌다. 마지막으로 간 바다는 가을이 다가와서 그런지 꽤 큰 파도가 일었다. 바다에서 파도를 따라 뛰어보기도 하고 파도를 거슬러 헤엄도 쳐본다. 아직 발이 닿지 않는 곳에 가지 못하는 겁쟁이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차가운 바닷물 위에 둥둥 떠있는 기분은 글자 그대로 환상적이다. 그리고 다시 물에 나와 모래 위에 누워 책을 읽는다. 몸이 뜨끈 뜨끈 해지면 다시 바다에 들어간다. 이걸 몇번 반복하고 나면 어느 새 이른 오후가 되고, 나는 차가 막히기 전에 훌쩍 짐을 싸 서울로 떠난다. 바다가 3시간이 아니라 30분거리에 있는 사람처럼 미련 없이 떠난다. 나는 바다와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 관계에는 적정 거리 유지가 중요하다.
수영은 다 커서 배웠다. 어릴 땐 물이 무서웠다. 초등학교 수영 수업 시간에 얕은 수영장 물에 빠졌는데, 그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을 수 있다는 걸 그때의 경험이 알려줬다. 그러다 방콕에서 휴가를 보내던 어느 밤, 호텔 수영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 열망이 나를 다시 물 속으로 끌어 당겼고, 그날 밤 처음으로 물에 떠 별을 헤아렸다. 이후 정식으로 수영 강습에 등록해 수영을 배웠다. 숨을 내쉬면 입김이 나오는 이른 겨울 새벽,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수영장에 간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아직은 몽롱한 상태에서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밤새 굳어있던 몸을 일깨운다. 그리고 첨벙! 차가운 물방울이 온 몸에 떨어지면, 완벽한 기상. 숨이 차도록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수영장에서는 항상 절박한 마음으로 수영하게 된다. 다리의 움직임을 멈추고 발을 딛으면 내 몸은 다시 단단한 땅에 서 있는데도. 지금 한 템포를 놓치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손 끝이 수영장 반대편 끝에 닿는 그 순간까지 모자란 숨을 허덕이고, 근육을 팽팽하게 당긴다. 이상한 일이다. 언제 내 발 밑의 땅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거리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선 지평선을 보는 여유를 부리게 되고, 정해진 수심의 네모난 수영장에서는 그렇게 절박해지는 것이. 한계를 모를 땐 자유롭지만, 선이 그어지면 절박해지는 걸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그 선인가.
나는 다시 여름을 기다린다. 끝을 모르는 바다와 태양 사이에 놓여있는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