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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온 Oct 24. 2021

그러나 상관 없었다

 어디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다들 나의 이태리에 대해 묻는다. 왜 가게 되었는지는 공통 질문, 인터뷰에 가면 거기에 뭘 배웠는지, 왜 돌아왔는지가 추가 되고, 사적인 관계라면 얼마나 좋았는지가 주로 따라온다. 


 나는 말 그대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이태리로 갔다. 나같은 사람은 은근히 많지만 은근히 없다. 먼저, 나는 놀거나 쉬고자 간 것이 아니었다. 회사를 관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한번 살아보는거야!' 라는 광고 메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 전공 및 그 동안의 직업적 발자취와 아주 상관 없는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이태리에 갔으며, 그렇다고 내가 죽기살기로 디자이너가 되겠다, 디자인으로 먹고 살겠다 하는 꿈을 가지지도 않았다.


 패션을 좋아했지만, 디자인을 배워봐야겠다 했던 것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홧김에 할 일이 없어 집 주변에서 할 것을 찾다가 그랬다. 등록을 하고 보니 고주망태가 되었던 다음 날에도 토할 것 같은 속을 부여잡고 가서 재단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6개월정도를 옷을 만들었다. 원피스도 만들고 셔츠도 만들며 즐거운 동안 자연스럽게 이제 디자인을 해야지 했다. 그리고 또 6개월을 매일 회사 끝나고 몇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일러스트를 그리게 되었다. 그러다 또 너무 자연스럽게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했다. 유학 가는 법을 알아봤다.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 유명한 도시의 학교들을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고 입학할 수 있을만한 학교를 찾았다. 몇개월 뒤 떠나게 된 밀라노의 학교를 찾았을 땐 너무 기뻐 안쓰던 일기도 썼다. 이 날의 공기와 기쁨을 잊지 말자며.


 엄마에게 떠보듯 얘기를 했다. 엄마 나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바로 답이 돌아왔다. 너는 재능이 없어. 평소라면 엄마가 딸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며 화를 냈겠지만, 그 때는 재능이 없으면 좀 어때, 라는 말이 술술 나왔다. 


 이태리로 떠나기 한달 전, 고향에 가서 엄마, 아빠, 동생과 저녁을 먹다가 말했다. '나 회사 관둘거고, 이태리에 가서 1년동안 디자인을 배울거야. 다음달 말에 떠나.' 저녁 식사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그러나 몇일 뒤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며 아빠는 말했다. 도전하며 살아야지. 아빠도 도전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 후 일년 동안 밀라노의 패션 스쿨에서 나는 가장 못하는 학생에서 그럴듯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훌륭한 졸업생으로 거듭났다. 매일 일러스트를 그리고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또 그리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색연필과 마카를 끊임 없이 사고 샘플 천을 사러 다니고, 유럽의 역사와 디자인을 보고 배우고 영감을 얻고. 그리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건 내 길이 아니네. 나는 재능이 없잖아. 역시 엄마 말이 맞았구나. 그리고 나는 다시 비지니스로 돌아왔다. 


 이 시간을 나는 실패로 정의해야할까? 누구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것이 성공이였는지 실패였는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며 그 또한 시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또한 어떤 때에는 실패하며 동시에 성공하기도 한다. 



나는 아마 이태리로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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