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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온 Oct 24. 2021

그 날의 일몰


우울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우울이 얼마나 마음을 좀 먹는지.

몇번의 이별과 매일 소리를 지르는 상사의 합작은 나를 훌륭하게 좀 먹었다. 매일매일 술을 마시다 잠들었다. 


나는 내가 불행의 손을 놓은 날의 풍경을 여전히 기억한다. 

언니네 부부와 스키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결혼한지 십년이 넘은 언니네 부부는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겼다. 언니는 나를 선뜻 자신들의 스키 여행에 끼워넣었다. 언니의 스키복을 입고 스키를 처음으로 신었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 나는 병든 닭처럼 비틀거렸다. 발을 11자로 만들고 내려오다가 멈추고 싶으면 A자로 만들고, 숫자와 알파벳이 혼용된 언니의 지도 속에서 초급자 코스를 몇번 반복했다. 하도 많이 굴러서 뽀송 했던 옷은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금방 축축해졌다. 긴장했던 몸은 따뜻한 커피와 함께 녹아내렸지만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오후 3시쯤이 되자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형부는 우리가 평양 냉면을 먹어야한다고 했다. 거기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맛집이 있으니 우리는 그 곳으로 갔다. 슴슴한 평양 냉면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나는 노근노근해진 몸을 창가에 기대고 반쯤 졸다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봤다. 그 풍경에서 나는 비로소 불행과의 이별을 고했다.


불행의 손을 놓았다고 해서 곧바로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의 행복에 기생했다. 행복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몇일씩 몆주씩 언니네 집에 가서 지내고, 반드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를 골라봤다. 불행에 대한 나의 면역은 아주 낮아서 나는 불행이 나에게 전염될까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안심하면서도 내 마음이 그 불행에 물들까 겁을 냈다. 


그렇게 차곡차곡 나 자신을 위한 마음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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