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의 나는 매일 구두를 신었다. 대학시절 꿈꿨던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블라우스나 셔츠에 정장 치마 혹은 딱 붙는 슬랙스를 입고 5센티는 가뿐히 넘은 스틸레토를 신고 또각또각 걸었다. 나는 절대 통굽을 신지 않았다. 막연히 정장의 완성은 얇은 굽, 뾰족한 앞 코의 스틸레토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옷을 사고 다른 옷을 입었다. 옷장은 터져나갔다. 주말에는 짧은 치마를 입었다. 회사에서 입을 수 없음을 불평하며 민소매와 짧은 치마 등을 입으며 자유롭다고 느꼈다.
밀라노에는 다 해서 30키로그램, 신발은 두켤래 옷은 세네 벌쯤, 단촐한 짐으로 갔다. 그래도 가장 아끼는 힐을 하나 넣었다. 막상 가보니 바닥이 울퉁불퉁했다. 몇년전 힐을 신고 걷기에 너무나 불편하다고 뉴스에 나와 교체되었던 청계천 산책로 같은 네모난 작은 돌길이었다. 힐을 신고 씩씩하게 걷기가 너무 어려웠다. 길을 구경하고 사람을 구경하느라 하루에 몇천보를 기본으로 걸어다녔다. 힐은 옷장 안에 조용히 뉘어두고 매일같이 운동화를 신었다. 늦게까지 작업한 날 다음날 아침에는 안경을 끼고 갔다. 그런 날들이 늘어갔다. 옷을 사는 대신 색연필을 사고 종이를 샀다. 옷은 아주 가끔 샀다. 비슷비슷한 차림으로 매일 돌아다니는 것이 익숙해졌다. 적은 옷으로 멋을 내며 유럽 거지룩이라며 웃었다. 덜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치마를 입지 않으니 스타킹이 필요 없었고 브라를 하지 않으니 브라가 필요 없었다. 만들어진 라인이 아닌 내 몸이 보였다.
지금은 일년에 몇번 정도 dress-up 한다. 가끔 기분이 내키는 날인데 많이 걸을 필요가 없고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을 때. 혹은 친구의 결혼식에. 그 외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한 최선을 생각한다. 옷은 신경 써서 산다. 매일 밤 자기 전 다음날 입을 옷을 고민한다. 나는 꾸미는 게 좋은 사람이니까.
다만 기준이 바뀌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