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란 뭘까. 아침부터 쌩뚱맞은 고민을 하다가 록산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가 떠올랐다.
브라는 거의 하지 않지만 가끔 내 엉덩이를 보며 쳐지지 않았는지 고민한다. 거울로 내 얼굴은 잘 보지 않지만 친구의 눈가의 주근깨를 보고는 기미 되면 어쩌냐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회사를 갈 땐 편안한 슬랙스를 입고 다니지만 친구를 만날 땐 미니스커트를 입어볼까 옷장 앞을 서성인다. 곳곳에 성차별이 녹아있는 작품을 재밌게 보고 난 후 나중에 성차별을 지적한 글을 읽고 머쓱해한다. 가끔은 성차별적 농담이 웃기다.
나는 이런 리스트를 백개는 더 쓸 수 있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이런 고민을 담은 책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닌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인 것이 낫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것 때문에 페미니스트임을 숨기지도 부정하지도 않겠다는 선언이다.
예전에는 오히려 겁이 없고 부끄럽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라며 페미니스트의 스펠링을 틀려도 당당했다. 하지만 공부를 할 수록, 깊숙이 고민할 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고, 해석하기 어려웠다. 벼는 자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나는 갈수록 그냥 입을 닫았다. 나는 틀릴까봐, 내가 부족할까봐. 혹시 부끄러운 일이 있더라도 나 혼자만 알도록.
그러나 내가 해야할 것은 실수가 무서워 입을 닫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페미니스트도 마찬가지다. 오늘 옳았던 일은 내일 부족할 수 있다. 우리는 계속 전진하고 있기에. 역사의 진보를 믿는데 오늘의 내가 어찌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냥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고 조금씩 앞으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