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과 작은 도서관

작은 아씨들

by 여온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건 필연적 이유(예산이라든지 출퇴근을 감안한 위치라든지)가 컸지만,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십여년정도 서울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도서관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내가 주로 다닌 도서관은 학생일 땐 내가 다니던 대학 도서관이었고, 취업을 하고 나선 회사에서 그나마 가기 편했던 서울 도서관 정도였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없으면, 자연적으로 큰 도서관을 찾게 된다. 장서가 많으니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적어도 한두권은 무조건 있을거란 보장이 되어 있고, 몇시간이고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으니까. 큰 도서관을 다니는 동안 도서관의 경험은 오롯이 혼자의 것이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3분 거리의 도서관이란 장소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험이었다. 일단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게 된다. 왜? 작아서.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월별 주제별로 추천 도서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는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월별 전시 도서들을 구경하며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모은다. 신간 도서를 하나씩 살피고, 큰 도서관 보다 적은 개수의 책꽂이를 두루두루 살피며 흥미가 가는 책을 골라낸다. 분류별로 더 적은 책이 있어서 오히려 더 다양한 분류의 책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도서관엔 없지만 읽고 싶은 책은 상호대차를 신청해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면 그 기한 내에 아무때나 가지러 간다. 대여 한도가 꽉 차도록 책을 빌리면서 이 책이 별로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내일이라도 또 오면 되니까. 몇시간 씩 머무를 필요도 없다. 집이 코 앞인걸. 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도서관을 지키고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동네 카페나 혹은 와인바 같달까? 나 혼자 가서 쇼핑하듯 책을 고르고 혼자 책을 읽고 그 감상을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고 추천도 주고 받고 가끔은 잡담도 하는 공간. 작은 도서관은 사서 선생님들이 추천하는 도서와 책 관련 이벤트로 꽉 차 있다. 성인 평균 일년에 책 한권을 읽을까 말까 한 요즘, 책에 대해 나보다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독서는 혼자 하는 경험에서 공동체의 경험으로 확대 된다.

서론이 길었다. 이게 내가 거의 이십년만에 작은 아씨들을 읽게 된 계기다. 나는 사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이 책을 거들떠도 안 봤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은 어느 평범한 집안의 네 자매에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별 얘기 아닌데, 한번 표지를 열고 났더니 몇시간이 지났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앉은 자리에서 읽는 몰입의 경험은 정말 굉장하다.


작아서 더 좋은 것들이 있다. 그 목록에 도서관을 추가해본다. 더 많은 작은 도서관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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