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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바꾸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by 오프웰

인생을 살면서 항상 가지고 있는 의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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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을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왜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느끼는 걸까?

왜 좋아하는 음식은 왜 바뀌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을 유지하지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준비할 순 없을까?

누구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수월하게 하는 반면 나는 더 힘들다고 느끼는 걸까?

누구는 음식을 잘 참는데, 왜 누구는 습관적으로 과식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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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다.

우리가 왜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궁금증은 이것을 알고 해결되었다. 바로 '프레임'이다.


오늘 내용은 『프레임』의 책 내용을 참고했다.



프레임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이미 프레임의 개념을 알고 있다. 바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통해서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안 개구리 취급을 받는 이유는 우물의 너비만큼 세상을 볼 수 있어서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실제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우물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 진짜 세상을 보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집에서 창밖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도 진짜 세상이 아니다. 창이 넓다면 그만큼 세상을 더 정확히 볼 수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럼 집 밖으로 나오면 진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사물과 사람에 기억을 입히고 바라본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적이 있으면 그 음식을 피한다. 또한 학교나 부모님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은 위험하고 대기업만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의심 없이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잘못된 프레임을 선택할 때 치러야 할 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 프레임은 상당한 방해물로 작용한다. 실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것을 쫓기 쉽다.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주변 사람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실패가 불가피하다. 이때 도전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면 의미 있는 노력을 충분히 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도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프레임은 우리 자신이 만든 색안경이다. 우리의 몸을 고성능 사진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만 시각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냄새, 소리, 질감, 온도, 느낌 등 을 기록할 수 있는 최첨단 사진기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며, 이것들이 색안경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우리는 사물에 우리의 감각을 입힌다.

진짜 세상을 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건 프레임을 부수는 것이다. 사진기를 부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부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리프레이밍'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느끼고 내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되는 법


프레임은 관점이다. 관점은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이다. 따라서 리프레이밍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생각이 감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리프레이밍을 하면 평소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이나 상황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A는 무언가 이루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B는 삶은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에게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느끼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A는 기꺼이 고통을 수용하지만 B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며 부정적인 감정으로 더 심한 고통을 느낀다. 시간이 흐를수록 A는 성취감을 느낄 확률이 높지만 B는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우리 자신도 다르게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생각이 맞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가 생각한 자신의 모습이 있다. 외모, 성격, 가치관 등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런 정체성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정체성을 네이버 사전에서는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정체성은 실제 내가 아닌 우리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원하는 정체성을 만들 수 있으며, 결국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을 살면서 던져야 할 질문 단 한 가지

'왜 그 일을 해야 할까?'


우리는 인생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 만약 나는 사람들과 말하고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소심하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 삶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내가 있는 지점에서 목표 지점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방법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 안 하던 습관을 만드는 등의 노력은 힘겹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만약 '나는 더 노력해야 돼'에서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을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미 현실이 된 것처럼 이미 자신감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부자고,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고, 이미 운명의 짝을 찾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내면의 부정적인 목소리와 싸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리려 노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원하는 것에서 멀어진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건 '어떻게'라는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인데, '어떻게'는 우리가 실제로 믿고 행동할 때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라는 답을 알아야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답이 명확히 보이는 목표는 나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고만고만한 성취에 족하도록 만든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How?'가 아닌 'why?'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왜라는 질문의 답은 꼭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내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할 때 행복하기 때문에 등등 모든 이유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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