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얼마 뒤, 공기업도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며 아래층에 있는 총무팀에 유튜브 담당자가 채용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분이 입사한 후로, 블라인드에 남팀장과 여과장의 불륜이 의심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내용이 꽤나 구체적이었는데, 전회사에서 남팀장이 법무팀에 근무하던 당시 자문 계약을 맺은 로펌 파트너 변호사의 비서가 여과장이라고 한다.
법률 자문 명목으로 꽤 높은 예산을 승인받았는데 실제 사용 내역을 뜯어보니 늦은 저녁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기록이 많았고, 심지어 주말에는 골프장에도 갔다고 한다. 감사팀에서 이를 의심하여 조사가 시작되자 남팀장이 눈치채고 부리나케 공기업으로 이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여과장까지 직접 본인의 팀으로 땡겨왔다는 소식이 그 회사에도 퍼져서 블라인드에도 난리가 났다고 한다.
마침 새로운 유튜브 담당자가 남팀장과 같은 민간기업 출신이라 소문의 근원으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지금 회사에서도 탕비실, 비품실, 회의실 등에서 두 사람을 마주쳤다는 증언들이 이어지면서 누가 처음으로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대리도 분한 마음에 비품실에서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봤다는 댓글을 달았다.
소문이 일파만파 커지자 남팀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고소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직원들은 이미 확신에 찼다.
"내가 이런데서 일하고 있으니까 만만해 보이지? 감히 누굴 건드려?! 블라인드 올린놈 찾아내서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할거야! 함부러 떠들어대는 것들도 싹 다 명예훼손으로 쳐넣을거니까 말 똑바로해!!"
...
남팀장이 병가를 핑계로 출근을 하지 않고 있던 중, 와이프라는 사람이 회사에 찾아와 인사팀을 만나봐야겠다며 1층 로비에서 난동을 부렸다. 일이 커지기를 원치 않았던 임원들의 닦달로 아무것도 모르는 인사팀 막내를 보냈는데 여과장의 재직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이혼 소송이 예정되어 있으며 증거 수집 목적이라고, 협조를 안해주면 채용 비리로 감사원에 민원을 넣는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회사가 또 한바탕 난리가 나고, 여과장의 채용 절차가 적법했는지 소명하느라 인사팀도 꽤나 시달렸다. 남팀장이 여과장과 동일한 회사에 근무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면접 평가위원으로서 배제될 사유는 없었다. 또한, 전회사에서 법무팀 담당자와 자문 로펌의 비서로 알게 된 사이라 직접적인 업무 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던 것이다.
소동이 나자 여과장은 갑자기 스트레스성 공황장애가 왔다며 질병휴직을 신청했다. 회사에서는 일단 소문을 잠재우고자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몇 달 후, 여과장은 성형수술과 개명을 하고 복직했다. 사내 메신저에서는 이전 이름으로 직원 조회를 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팀장은 윤리규정 위반으로 보직 해임되어 팀원으로 강등되고 지방 사무소로 전배가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실제로 이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대리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지방에서 쭉 근무하다가 곧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