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요, 오늘의 밥당번

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생선구이집 가는 날인가? 이대리 오늘도 잘 부탁해! 하하하!"


오늘은 이대리의 팀이 본부장님 식사 당번 차례이다.


이본부장, 서울대 출신으로 오랜시간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7-8년 가까이 고배를 마시다가 공기업에 입사했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으니 '윗사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굳은 일도 도맡아 묵묵하게 일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학교 출신의 선배가 기관장으로 오게 되면서 승진을 거듭하여 최근에 본부장이 되었다.

문제는 본부장이 되고 나서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며 하루에 한 팀씩 돌아가면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각 팀끼리 상의해서 먼저 메뉴를 제안하라고 시켰다. 그런데, 자리가 불편한 나머지 모든 팀에서 음식이 빨리 나오는 중국집에만 가려고 하니 하루는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다.

"내가 올드보이 최민식도 아니고 맨날 군만두만 먹을 수 없잖아! 다들 이럴거야 증말?

나 때는 임원들 전날 식사는 어떤걸 하셨는지 사전에 파악해서 보고를 드렸다고!

요즘 수평적 조직문화네 뭐네 해서 자율성을 줬더니만 이런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그 이후로는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먼저 골라서 팀원들을 반강제로 데리고 갔다. 이대리의 팀이 식사 당번이 된 어느날... 우연히 생선구이집에 갔다가 생선 가시를 너무 '잘 발라서' 먹었던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몸이 편찮은 아빠를 위해 생선살을 발라드리면서 쌓아온 스킬이 본부장 눈에 띄었나 보다.


그날부터 이대리의 팀이 식사 당번이 되는 날은 생선구이집에만 가야 했고, 이대리는 본부장이 먹을 생선 가시를 먼저 발라내고 자기 것을 챙기느라 손가락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루는 잔가시가 남아있는 생선살을 본부장이 똑바로 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다가 목에 걸려서 응급실에 가야 한다는 둥 한바탕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내심 생선구이집은 이제 안가도 되는 건지 모두들 기대했으나 오늘 이렇게 또 차례가 돌아왔다.


식당에서는 자칭 '소통 왕' 본부장님의 주도로 대화가 이어진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차를 많이들 타나? 이대리는 뭐 좀 아는 거 있어?"

"저는 지하철 타고 다녀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들놈들이 자꾸 차를 사달라고 해서, 요즘 대학생들은 경차 하나씩은 있다는데 고민이네~"


자식을 늦게 봐서 인지 정년이 가까워진 나이지만 연년생 대학생 아들 두 명이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 등록금 대느라 노심초사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철없이 차 사달라는 소리나 하고 있다니 참 팔자 좋구나 이대리는 생각했다.


사실 정권이 바뀌면 기관장이 주요 타겟이 되지만 학연으로 엮인 본부장도 언제 날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늘 노심초사할 것이다. 본인이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본부장 자신도 실무자 시절 당시 정권에서 공기업 효율화 과제가 떨어졌을 때 임원들을 내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시간 중에도 제2의 인생준비를 열심히하고 있다.


"그나저나, 송과장 이사는 잘했나? 공인중개사라서 걱정이 없겠구만!"

송과장은 금융권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예전에 공인중개사 자격을 땄다고 한다. 본부장은 내심 부러웠는지 송과장을 수시로 불러내서 인터넷 강의 추천해달라, 교재 추천해달라하며 귀찮게 하곤 했다. 그 와중에 차마 가족들에게 공인중개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운 건지, 회사에서 인터넷 강의를 틀어놓고 당당하게 열심히 보고 있다. 본인이 리더로서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직원들도 동기부여가 되어 더 열심히 일할 거라나 뭐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공인중개사 시험을 4번을 더 봤지만 모두 "아깝게" 떨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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