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이대리의 퇴근길은 병원 앞 김밥집으로 향한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퇴근한 지 3개월차, 이제는 집 보다 병원 가는 길이 더 익숙하다. 엄마와 나누어 먹을 김밥을 한 줄씩 사서 퇴근하는 길목, 희한하게 번화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지개 빛 웃음이 가득한데, 병원에 가까워질 수록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
눈이 많이 내리던 8년전 추운 겨울, 그 날은 유독 아르바이트 하면서 실수가 잦아 피곤함이 배가 되었던 날이었다. 희한하게 그런 날은 꼭 엄마에게 전화가 오곤 했다.
-"세정아, 혹시 시간되니? 엄마랑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그 날, 세정은 아르바이트를 완전 망쳤다. 소주를 주문한 사람한테 사이다를 갖다 주고, 고기를 굽다가 현기증이 나서 집게로 손님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그 날, 세정은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아빠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세정의 아빠는 경찰이었다. 공부는 잘하지만 육성회비를 못 내서 선생님한테 혼났던 사람, 도시락이 없어서 점심시간이면 수돗가와 도서관으로 향해야 했던 사람, 소설책에서나 봤던 그런 사람이 아빠였다. 가난함은 아빠에게 더럽고 냄새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겼고, 결벽증으로 발현되었다. 결벽증이 있던 아빠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공부 머리와 성실함이 있다는 것이었고, 당신 판단에 깨끗하고 안정적인 직업으로 경찰을 택했다. 그리고 성실하게 몸 사리지 않고 일했다. 순경으로 입사해서 경감까지 승진한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했다. 오로지 승진 시험 성적과 근무 평정만으로 이룬 성과이지만, 남들은 사내 정치는 모르고 일만하는 아빠를 경쟁자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승진 직후에는 매번 지방 오지로 가야만 했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했다. 밤낮이 뒤바뀐 25년간의 근무가 남긴 건 불면증, 그리고 내근직이 아닌 현장직 특성상 불규칙한 식사 패턴이 만들어낸 만성 소화불량과 만성 장염이었다. "야간에 근무하면서 컵라면 먹지 마" 라고 이야기하는 세정에게 "야간 근무의 꽃이 컵라면이야. 너무 피곤한데 컵라면 하나 딱 먹고나면 정신이 든다니까" 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던 세정의 아빠.
매년 하던 건강검진에서 이번에는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경찰들의 외상 치료를 위해 지어진 병원에서 바로 퇴원하지 말고 일단 입원을 하도록 권유했다.
-"별 일 아닐거야. 내가 요즘 잠을 잘 못잤어. 알지? 그~ 박 경위가 최근에 출산휴가 가는 바람에 다들 정신없어 해서 내가 좀 더 신경쓴다고 했더니 바로 티가 나나봐. 나도 이제 늙네, 늙어"
하지만 그날 받아든 결과지는 별일이었다. 대장암 소견이었고, 암 종양이 커서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항문을 살릴 수 없으니 장루를 차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는 쓰러졌고, 아빠는 무릎을 꿇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며, 그 살려달라는 울음이 세정의 귀에는 세상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그날 이후 세정과 부모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빠는 휴직 후 치료를 위해 대학 병원으로 옮겼다. 방사선 치료를 견디며 야위어 갔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할 때쯤 수시로 잇몸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엄마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부담하느라 기존에 하던 일을 늘려야 해서 바빠졌다. 세정은 학교 동아리와 학회활동을 접고 휴학을 했다. 다음 학기에 예정되었던 해외대학 교환학생 포기 서류까지 제출하고 나서는 상황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도 집 근처가 아닌 병원 근처에서, 아빠의 치료 스케줄을 피해 새로 구해야만 했다.
이후 수술 과정에서 이미 암이 간으로 전이된 상태라는 걸 확인했다. 장루를 차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더 긴 싸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하면서 회복해가는 듯했다. 하지만 건강과 별개로 마음의 상처는 회복이 더디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우울감이 늘었다. 아빠는 병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와 복직을 하고 싶어했다. 병원에만 있어서 더 우울하다고 했지만 진심을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입원비가 많이 나와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와중에 세정의 동생이 고3이라는 것도 당신에게는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복직을 앞둔 어느 날, 아빠는 한 통의 전화에 다시 무너졌다. 기존에 근무하던 곳이 아닌 집에서 2시간 떨어진 경찰서로 복직 발령을 받은 것이다. 병력이 있는 현장직은 야간 근무에서 배려가 필요하니 동료들이 꺼려한다나 뭐라나. 아빠가 근무하던 경찰서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아빠는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배신감과 속상함에 이제 본인은 버려진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복직을 했다. 그리고 보란듯이 언제나처럼 열심히 일했다. 훗날 짐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간 아빠의 자리에는 환하게 웃는 세정의 사진과 가족 사진이 붙어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이라는 문구를 붙여두고. 아마 아빠는 그 사진을 보며 애써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를 지켰으리라 세정은 생각했다.
세정이 학교에 복학해서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 아빠는 일을 하면서도 치료를 이어갔지만 점점 예민해졌다. 결벽증의 대상이 주변 사람들에게 향했고, 아빠와 세정의 갈등도 늘어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엄마도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날카로운 아빠와 세정 사이에서 살얼음판 같은 날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다시금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고 한다. 아빠는 또 다시 휴직을 하고 수술받아야 했다.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감이 사라진 아빠는 극도로 우울하고 불안해했다. 그 곁을 지켜야 하는 세정과 엄마는 세상이 매일 매일 말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술 이후 병원에서는 이제 '표적치료제'라는 항암제를 써야한다고 했다. 보험이 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맞는데 8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렇지만 항암제가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10번의 항암제를 맞았고, 그 때마다 아빠는 3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고 끙끙 앓았다. 아빠가 병마와 싸우며 긴 밤을 보내는 동안, 세정은 생각했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희망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이 긴 밤이 왜 안 끝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병원에서는 표적치료제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 임상이 진행중인 항암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했다. 동의서를 쓰러 다녀온 날, 세정은 가족 몰래 아빠의 주치의에게 이메일을 썼다.
‘우리 아빠에게 선생님은 신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우리 아빠는 울고 웃어요. 어렵게 참여한 임상이지만 부디, 희망고문은 하지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희망이 클 수록 좌절이 클 테니까요. 그러니 제발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주세요’
의사는 회신하지 않았지만, 지난번 10번의 표적치료와 달리 이번 임상은 3번의 치료 후에 중단을 선언했다. 환자에게 무리가 될 것 같다는 이유이다. 별 소득이 없었지만 아빠는 다시 복직을 했다. 아빠는 병적으로 운동과 식단 관리에 집중했다. 적정한 체중, 적정한 근육량이 있어야 항암치료를 이어갈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비가오고 눈이 와도 아빠는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운동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는 무릎이 아프다고 파스를 찾았다. 무리해서 운동을 한 것 같다며, 며칠 쉬어야겠다고 했다. 쉴수록 무릎의 통증은 심해졌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아빠는 다발성으로 암 전이가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이상의 치료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