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이제 아빠의 삶을 정리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파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그저 조금이나마 편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치료 목적이 아닌 통증 완화를 위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호스피스 병원이다.
3개월의 병원 생활을 지나며, 세정은 자기도 모르게 죽음이라는 무게가 가볍게 여겨지는 것만 같아 무서워졌다.
병실에는 5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매일 아침 침대가 하나씩 빠지고 새로운 침대가 또 하나 들어온다.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가족이 있거나, 가족이 없거나…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 맞이하는 일상이 세정에겐 ‘기적처럼 살아낸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큰 기적 같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중이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며, 아빠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섬망 때문인지 자꾸 출근을 해야한다며, 오늘 근무지는 어디라며 중얼거렸고 자꾸만 경찰 정복을 찾았다.
요즘 세정의 바람은 단 하나이다. 우리 아빠가 '무지개 병실'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은 '무지개 병실' 이라고 불리는 임종실로 옮기곤 한다.
알록달록 예쁘고 따뜻하게 꾸며진, 병실 같지 않은 밝은 분위기의 아늑한 방이다.
그런데 이미 다른 환자가 입실한 경우 응급 처치실처럼 삭막한 곳에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세정은 아빠의 마지막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
아빠의 통증이 더이상 약으로 조절되지 않자, 의사는 모르핀이라는 마약 진통제를 처방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다. 엄마는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는 아빠와 함께 핸드폰 연락처를 정리하고 납골당을 계약했다.
아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저 너머는 추울 테니, 혼자 있고 싶지 않다고, 자주 보러 와달라고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세정에게 아름다운 20대를 병원에서 보내게 해서 미안하다며 세정이 꼭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외도 가고, 석사공부도 하고, 박사까지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빠는 그거면 됐다고 했다.
무지개 병실로 옮긴 날, 세정은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진정제 때문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모르핀을 맞으며 소리를 질렀다.
눈을 뜨고 있으면 각막이 상한다고 하니 세정은 아빠의 두 눈을 거즈로 덮으며, 아빠가 빨리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아빠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빠가 눈을 감는 순간, 세정은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세상으로부터 연약한 속살을 보호해주는 달팽이의 껍질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채 울음이 나오지도 않고 자기도 모르게 아빠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졌다.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좋은 데로 가야 해. 거기에서는 아프지도 말고, 괜히 경찰해서 고생하지도 말고, 편해졌으면 좋겠어. 그동안 내 아빠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어디선가 마지막 순간까지 청각은 감각이 있다고 하던가, 세정은 아빠의 귀에 속삭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손은 점차 차게 식어갔다.
막상 일이 닥치니 세정은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 때, 김팀장의 전화가 왔다.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떠오르지 않아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
"이대리, 듣고 있어?"
"...."
"이세정! 너 괜찮아?"
"...."
"힘들지? 아버지 좋은데 보내드렸어?"
"....팀장님.. 아빠가..."
"이대리, 내가 어디로 갈까? 정신없지? 내가 가서 하나씩 다 하면 되니까 다른 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일단 내가 갈테니까 어디로 갈지만 알려줘"
"....팀장님... A병원 장례식장이요... 팀장님... 저 이제 어떡해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정신 놓지말고 일단 거기서 만나. 어머니랑 같이, 아무것도 하지말고 있어. 내가 1시간 내로 갈 테니까. 알았지? 조금 이따 다시 전화할거니까, 전화 끄지말고."
세정은 무지개 병실에서 아빠의 침대를 밀고 나오며, 한 사람의 세상이 꺼져가도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똑같이 흐른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닥에 닻을 걸고 내딛는 것만 같았고, 웃기게도 이 타이밍에 잠이 몰려왔다. 자꾸만 정신이 흐려지는 듯했다. 무슨 정신으로 장례식장까지 들어갔는지 기억도 없지만,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대리, 나야. 걱정마. 이제 내가 알아서 할게"
장례식장에 장제용품을 들고 먼저 도착해서 세팅까지 마쳐둔 김팀장을 보며, 세정은 그때서야 눈물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아빠는 장례식장이 쓸쓸할 거라고 했다. 올 사람이 없어서 어떡하냐고,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며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낼 가족들을 당신보다 더 걱정했다. 하필 여름휴가 피크 시즌이라 세정은 아빠 생각보다 더더욱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3일장 내내 밤낮없이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도우미 이모님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건 오랜만이라며, 우리 가족이 무슨 집안인지를 물었다. 세정은 아빠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조화환도 너무 많아서 복도에 세울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세정은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세정이 무의식중에 '장례식장에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조화도 없을 것 같아서, 아빠가 걱정해요' 라는 말을 김팀장에게 했다고 했다. 김팀장은 온갖 지인과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을 돌려서 근조화환을 다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회사 동기들, 팀원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휴가를 내고 세정의 옆을 지켰다. 함께 밥을 먹어주고, 세정의 옆에서 같이 울고 웃어줬다.
어느덧 3일장이 끝나고, 김팀장은 세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괜찮아. 아버님 몫까지 내가 다 할게. 내가 아버님께도 장례식 내내 말씀드렸어. 앞으로 세정이는 내가 잘 돌볼테니 걱정 말고 좋은데 가시라고"
세정에게 흐린 기억으로 남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김팀장이 장례식 전반을 본인 가족처럼 챙겼다고 했다. 세정은 생각했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일이 생기면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지키며 손과 발이 되어주겠다고. 그게 최고의 위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