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하도록 누군가 당신의 등을 밀어준다면

오피스 빌런

사장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어느 날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나는 직원들의 몫을 계산해주기 바빴다.

또,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거리낌 없이 말을 걸었다.

명목상 있는 경조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도 꼭 확인하면서, 기쁘거나 슬픈 소식이 있으면 꼭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곤 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직원들은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 사장과 누구네 둘째아이가 학교에 입학한다는 둥,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장이 어느 직원의 책상에 붙어있는 아이돌 포토카드를 보고 남자친구냐고 물었다던 이야기는 직원들 사이에 계속 회자되었다.


사장의 그런 행보를 싫어하는 건 임원들뿐이었다. "사장님 지시사항"이라며 막무가내 업무지시가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은 당뇨병 환자였다.

혈당 관리때문에 음식도 가려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사장은 ‘당 떨어질 땐 핫초코’ 라며 피곤해보이는 직원들에게는 핫초코를 권했다.

본인은 마시지도 못하면서 이대리를 종종 불렀다.


이대리가 전날 병원에서 피곤한 몸으로 출근한 날 우연히 사장을 만나게 되면, 사장은 탕비실에서 같이 핫초코를 마셔주었다. 동기끼리는 원래 힘든 날 같이 소주한잔 하는건데, 우리는 핫초코로 '퉁치는' 거라고 했다.


사장은 운전을 하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뿐이었다. 이대리가 무슨말이라도 해야하나 눈을 굴리자,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말 말고, 고마워도 말고. 우리딸이면 어쩔까 싶더라. 딸이 아빠 생각나서 출퇴근을 못한다 그러면, 아빠는 거기 우두커니 서서 못 가실거야. 이대리 등을 밀어서 다시 나아가게 해야 아빠가 좋은 데로 앞으로 앞으로 가시지. 이대리, 세상엔 그래도 등을 밀어주는 사람들도 있어. 나중에 이대리도 세상으로 나가라고 등 밀어주는 사람 해. 알았지?"


생각해보니 이틀 밤의 장례식 동안 사장은 매번 찾아와서 자리를 지키며 이대리에게 위로를 건넸다.

장례식장 육개장과 황태국이 물릴거라며, 냉면과 만두를 사와서 건네며 먹어야 힘난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았다.


지나고 보니, 그 정신없는 중에도 김팀장 뿐만아니라 이대리의 곁을 지켜준 이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후에도 한 달을, 김팀장과 사장은 돌아가면서 이대리의 출퇴근을 도왔다. 이대리가 괜찮다고 해도, 김팀장과 사장은 한 달의 카풀을 채웠다.


가끔 김팀장도 사장이 무슨말을 했냐고 물었지만, 이대리는 그냥 클래식 음악만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다고 했다.


한 달이 흘러 이대리가 사장에게 감사했다고,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말했을 때, 사장은 이대리에게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가을이라 전어철이니,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는 제철음식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사장은 이대리에게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사장은 이대리와 함께했던 지난 한 달이 직장 생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늘 무채색 같던 출퇴근길이, 누군가를 앞으로 나아가게 밝혀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별거 안 하고도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앞으로 어떤 아빠가, 어떤 어른이 될지를 고민해보았다고 했다.

이대리는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면, 나도 누군가의 곁에서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세상은, 꼭 원망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다고.

이전 11화다시 밖으로 나오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