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회사생활

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이대리는 종종 회사가 작은 사회라고 생각하곤 했다.

신문의 사회면에 나올법한 일들이 실제로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닌데 회사를 다니면서 흔히 말하는 도박, 마약, 사기 사건의

당사자들을 모두 보았다. 그래서 드라마가 모두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이대리는 이사회 지원 외에도 정보 공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공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재무, 회계, 인사 등 다양한 부서와 협업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온갖 소식들을 접할 일이 많은데 도박사건은 협력업체인 회계법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재무정보 공시는 크로스 체크가 필요해서, 이대리는 전년도에 결산을 담당했던 회계사에게 연락했다.

전화연결이 되지 않아 이메일을 남겼는데, 계속해서 연락이 닿질 않아 결국 법인에 직접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회계법인에서는 담당 회계사가 현재 연락 두절 상태라고 했다.


그로 인해 본인들 피해도 막심하다고 했다. 사내 커플로 결혼을 준비중이었던 사람인데 연락 두절 직전까지 사내의 다른 파트너 회계사들에게 돈을 조금씩 빌렸다고 했다. 결혼 준비를 위해 사내 대출까지 받아두고 잠적한 터라, 회사 내 분위기도 뒤숭숭하다고 했다. 오히려 회계법인에서는 이대리에게 혹시 연락이 닿으면 본인들에게도 연락을 꼭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일은 진행해야 했으므로, 이대리는 그 후에도 회계법인과 몇 차례 전화를 주고받은 끝에 새로운 담당자를 소개받았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그 회계사가 잠적 후에 어떤 해프닝을 벌였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도박 중독자라고 한다. 결혼을 핑계로 받은 사내 대출도 모두 도박에 탕진하고, 심지어 신혼집 마련을 위한 보증금도 날렸다고 했다. 수습이 안되는 상황이 되자 잠적을 했고, 경찰 신고 끝에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노숙자와 같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늘 정장만 고집하고 칼같이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에서 이대리는 그 회계사를 볼때마다 여의도 금융권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라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곤 했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남모르게 '여의도 직장인' 이라고 별명을 붙였었다.


그런 그가, 그것도 돈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생긴 것과 다르게 도박중독이었다니, 세상은 참 알다 가도 모를 일이었다. 역시 겉모습 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이대리는 생각했다.


마약 사건도 이대리의 회사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건의 당사자는 회사에서 채용한 '국제법 전문가' 였다.

사람들은 그가 채용되었을 때 다들 '엘리트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로스쿨 유학파 출신이었고, 위계 서열이 분명한 회사 문화에서도 다른 팀 팀장이나 본부장들에게 찾아가서 대화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늘 한 톤 높은 발성으로 분위기를 사로잡았고,

화려한 언변은 그를 보며 '엘리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덧칠하는 효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그가 입는 옷마다 톰브라운이라는둥, 버버리라는둥 명품 옷이라며 그가 꽤 잘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체 그런 사람이 왜 우리 회사에 있을까라며 누군가는 공기업에 이런 엘리트가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국제법 전문가가 채용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여름휴가 시즌이 되었다.

모두를 설레게 하는 휴가시즌에 사람들은 서로 어디로 휴가를 갈 지에 대해 묻곤 했다.

그 역시 여름휴가를 간다고 했다. 주말을 끼고 총 9일을, 방콕의 6성급 호텔에 호캉스를 하러 간다고 했다.

그조차도 사람들은 그에게 걸맞은 클래스의 휴가라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문제는 휴가기간이 지난 며칠 후에도 복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단 결근이라며 사람들이 수근댔다.

누군가는 그가 방콕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로펌으로 갔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자, 그 부서의 사람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확인해보니

그 국제법 전문가가 공항 마약 수사대에서 잡혀서 현행범으로 연행되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평소에 텐션이 남달랐다며, 그 모든게 다 마약 때문이 아니었냐고 수근거렸다.


이대리는 TV에서나 보던 마약 이야기가 실제 얼굴을 아는 회사 사람에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처음엔 남다른 엘리트라고 칭송하던 회사 사람들이 이제와서 그럴줄 알았다며 그를 비난하는 행태가 우스웠다.


이래서 SNL이나 개그콘서트에서 직장생활을 풍자하는 거구나,

사람들은 참 남의 이야기를 잘 지어내고 부풀리며 해석까지도 하는구나, 싶었다.


이 사건 이후, 이대리는 더욱 더 회사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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