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아빠가 떠난 이후, 이대리는 5일이라는 '경조휴가' 이후에도 출근이 어려웠다.
자그마치 6년간 반복된 투병이었고, 집보다는 병원이 익숙한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리의 출근길에는 아빠가 근무하던 경찰서를 지나거나, 마지막을 보낸 병원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모두 택하지 않으려면 한참을 둘러가야만 했다.
며칠 더 휴가를 쓰겠다는 이대리의 말에, 팀장은 이유를 물었고 이대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곳곳에서 아빠 모습이 떠다니는 것 같아서 눈물이 자꾸 난다고.
말 한마디라도 더 잘할 걸, 걸음마다 후회가 남고 그 흔적이 계속 따라다니는 것만 같아서 바로 출근이 어렵다고.
더는 미룰 수 없는 날이 되었을 때, 이른 아침부터 이대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대리, 나야. 오늘 내가 출근길에 픽업 가려고 했는데 우리딸이 어제부터 맹장염 수술을 해서 출근을 못하게 되었어. 그래서 오늘은 다른 사람이 갈거야. 이 이야기는 이대리랑 나랑, 그 사람만 아는거니까 불편해하지 말고, 괜히 폐끼친다고 사양하지 말고 오늘 출근 잘해!"
김 팀장의 전화였다. 어안이 벙벙했던 이대리는 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건가 싶어 서둘러 채비를 했다.
옆 부서에 잘 챙겨주던 차장님인지, 아니면 함께 장례식장에서 울어주던 같은 팀 과장님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자, 처음 보는 까만 세단이 비상등을 켜고 있었다.
"이대리! 얼른 타, 우리 늦어!"
창문을 내리고 소리치는 사람은 사장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공기업의 사장이 기사도 없이 운전대를 잡고 빵빵대는 모습에 이대리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사장님?"
"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타!"
사장의 재촉에 이대리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안전벨트 맸지? 나도 오랜만에 운전을 하려니까 나를 못 믿겠네. 일단 가보자고."
차가 출발하고, 사장은 마치 어제 봤다는 듯이 이대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김팀장한테 물어봤어. 이대리가 왜 안보이느냐고.
그저께 내가 또 당이 떨어져서 핫초코가 생각나더란 말이지. 나랑 몰래 핫초코를 먹어주는건 이대리 뿐인데, 물어보니까 아직도 안 나온다는 거야. 그래서 오늘은 내가 픽업왔지.
내가 요즘 당 떨어질 일이 많아서 핫초코를 매일 먹어야 하거든.
이따 점심시간에 그러니까 핫초코는 이대리가 몰래 타서 내방으로 와. 알았지?"
사장은 이대리가 입사한 해에 취임했다.
사장은 이대리를 보며 입사동기라고 했다.
전사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직원이 자신과 동기라며 사장은 '동기끼리 잘해보자'며 웃었다.
사장은 행정고시 합격 후 정부부처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가 왔는데, 행시출신은 동기 문화가 끈끈하다고 했다.
입사 동기가 사장이면 이대리는 최소 임원이상은 가야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빈말이 아닌지, 이후에도 사장은 몇 번 이대리를 불러 점심을 함께 먹었고 가끔 이대리보다 한 두 살 어린 본인의 딸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 큰 딸과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모습에 이대리가 알고보니 사장의 숨겨진 자녀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장은 웃으며 "이대리, 소문은 없어져. 그래도 덕분에 막내라고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을 걸? " 하며 웃어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