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나는 하루 전날 가서 정부부처랑 시청 담당자 먼저 만나고 합류할 테니, 나머지 인원들은 기차타고 잘 찾아오고, 그 동네는 카카오택시는 잘 안잡히고 공무원들 제휴 콜택시 업체가 있다더라고, 확인되는대로 연락처 알려줄게요”
청사 사전 답사 및 관계자들 협의가 필요한 사항들이 있어 TF 전원의 출장일정이 잡혔다.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서 김팀장님은 하루 일찍 가서 담당자들과 안면도 트고 전반적으로 상황을 점검해본다고 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확정되기 전에 주요 정부부처들이 이전할 청사가 먼저 지어졌고, 일부 부처는 실제로 입주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서울역에서 KTX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완전 시골 같은 동네는 아니기를 이대리는 내심 바랬다.
그러나 이게 웬걸,
KTX에서 내려서 역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눈 덮인 넓은 평야와 길게 뻗은 큰 도로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역 주변으로는 상권이 전혀 형성 되어있지 않아 역사 내에 몇 안 되는 식당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회사가 이전하게 될 곳은 원래 상가 건물로 지어졌는데, 유동인구가 적다 보니 공실이 심각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로 계약을 하게 된 곳이다. 역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이지만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택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택시를 타고 가는길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시베리아 같은 느낌이었다. 아파트인지 뭔 지 온갖 공사 현장으로 큰 트럭들이 왔다갔다할 뿐이었다. 정부청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가로로 이어지는 회색 건물들이 길게 늘어선 곳이었는데, 주변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를 않았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세운 철조망은 마치 감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얼마 간의 비슷한 풍경을 더 지나고 나서야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양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로 오게 되었다.
“3만원, 현금으로 줘”
“미터기 요금에 콜비 2천원 더 드리면 되는거 아니였어요? 카드결제는 안되나요?”
“아잇 뭘 모르시네, 이 동네에 한번 들어오면 빈 차로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지”
“그럼 영수증만 좀 써주세요, 회사에 출장비 처리해야 해서요”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불합리한 관행이었지만, 타지인이라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현금 3만원을 내고 TF팀원들은 회의장으로 향했다.
“어, 잘 찾아왔어? 다들 수고했어”
“팀장님,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이네요”
“아, 사내 IT 시스템 구축 추가 예산 때문에 부처 사무관 설득하느라… 어제 좀 무리했나봐, 괜찮아”
김팀장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누렇게 뜬 얼굴로 TF 멤버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회의 하루 전날 사비를 털어서 관계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김팀장님의 노력 덕분인지 회의는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났다. 그리고 시청에서 도시개발을 담당하고 있다는 주무관님이 관용차로 투어도 시켜주었다.
“저는 처음에 차출돼서 시청에 발령받아 왔는데요, 그 때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진거라니까요. 버거킹, 스타벅스가 처음 들어온 날에는 사람들이 서울 냄새 맡고싶다고 한시간 넘게 줄을 서서 들어가곤 했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뭐가 많이 좋아졌다는 건지 이대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 살던 아파트를 팔고 공무원 특별청약에 연달아 당첨되서 부동산 자산가가 되었다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호수 주변에 백화점 부지가 있는데 여기가 서울로 치면 압구정과 같은 동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 이번에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들의 이전이 확정되면서 집 값이 출렁했다는 이야기, 지금은 공터처럼 보이지만 용도가 정해져 있어서 상업지구, 주거지구로 송도처럼 발전할 거라는 이야기, 입지가 좋은 곳은 아파트가 10억씩은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 모두 이대리에게는 남일처럼 들렸다. 정확하게는 현실감각이 없다고 해야할까.
지하철도 없고,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에 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게 되는 이런 동네에 정말 이사를 와야 한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 지금이라도 이직을 알아봐야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대리는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