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민달팽이 이야기
아직 미혼인 이대리에게, 육아휴직은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곤 했다.
솔직히, 회사를 다니면서 '휴직'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끔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애가 둘이면 육아휴직을 6년, 애가 셋이면 육아휴직을 9년까지도 할 수 있는 공기업의 분위기에서, 이대리와 같은 미혼은 그냥 '일개미'로 불리곤 했다.
육아휴직이라고 해도 실제로 쉬는 것보다 실제 육아로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건 머리는 알고 있지만, 항상 육아휴직자가 부서에 생기면 휴직을 간 후의 뒤치다꺼리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남은 사람 입장으로서는 한숨이 한 스푼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통 육아휴직 대체 인력들은 기간제 근무라, 그 기간동안 근무할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기간제로 온 사람에게 새로운 일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다. 다들 그저 언젠가 본인들도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니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애써 이해하고 넘어가는 척 하는 분위기랄까.
최근에 민간 기업에는 남자 직원들의 육아휴직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대리 부서의 동료인 강 대리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이대리도 만감이 교차했다. 공기업에 재직하는 이유는 긴 육아휴직을 눈치보지 않고 쓸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강대리를 보며, 그 용기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앞으로 밀려올 일에 대해서 걱정을 안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 좋은 김 팀장 역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팀장의 반응은 약과였고, 다른 부서의 팀장과 임원들은 올 게 왔다는 반응을 보이며 '감히 남자가' 쓰는 육아휴직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주변의 온갖 구박과 눈초리에도, 강대리는 휴직을 강행했다. 그런 강대리를 보면서, 이대리는 처음에 걱정스러웠다가 슬며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같이 밥을 먹는 부서 회식에서 강대리에게 '다시 돌아올 생각 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임원을 보았을 때, 이대리는 급기야 '육아휴직이 죄도 아니고...대체 왜 남자 육아휴직에 저렇게 발작 버튼이 눌리는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강대리의 휴직 전 마지막 출근날, 강대리는 이대리에게 차 한잔을 함께하자고 했다. 이대리는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혹시몰라 어제 쿠팡에서 주문해둔 아기 양말 한 세트를 챙겨서 카페로 향했다. 강대리는 이대리에게 '그래도 내가 입사 선배인데...' 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양말세트에 감동받은 얼굴을 했다. 본인의 휴직에 유일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준 동료라며, 고맙다고도 했다.
"사실... 나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야. 아침에 출근하려면 집에서 6시전에 나와야하고 회사에서 칼퇴해도 집에 가면 8시가 넘어. 와이프도 워킹맘인데, 아이 등원이랑 픽업, 케어까지 거의 혼자한다고 생각해서 폭발 직전이야. 내가 휴직 서류를 안 내밀었으면, 아마 난 이혼소송장을 먼저 받아들었을걸"
강대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력을 안해본건 아니야. 시차출퇴근도 신청해보고, 했는데.. 알잖아? 일찍 출근한다고 더 일찍 갈 수 있는게 아니라는거. 일찍 출근해도 퇴근은 남들 퇴근할 때 하라고 눈치주는게 회사인데… 그 눈치를 뚫고 나가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못할 짓이더라고."
"얼마전엔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에서도 못오게하지, 와이프는 중요한 출장이 잡혔지, 나는 이사회 일정으로 도저히 휴가를 못쓰지... 지방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는 당장 올라오실 수 없는 상황이지...어떻게 해야 할지 답도 안 나오는데 와이프가 울면서 말하더라고. 이번에 또 자기가 기회를 포기하면 자긴 앞으로 그냥 애나 키우지 왜 회사오냐는 소리를 들어야할것 같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너무 미안해지더라고. 일하시는 장모님께 부탁드리고 하루 휴가쓰고 집에 오셨는데, 그날 결심했어. 얼마 안되는 기간이라도 내가 아빠노릇 좀 해보려고. 나도 부모인데, 참 쉽지 않네"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대리는 강대리의 낯빛이 어두웠던 두 달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점심식사도 거의 거르다시피 하고, 자리에서 일만하다 퇴근시간에 칼퇴하려고 달려나가던 강대리의 뒷모습은, 그런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