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는데, 머리가 하얀 노부부 여행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워낙 자식들이 일찍 독립을 해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머리가 하얀 부부만 여행을 다니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노부부들을 살펴보면 두가지 타입이 있다.
첫번째.
다정한 모습으로 웃음을 띄며 꼭 손을 잡고 다닌다.
이들에겐 길을 물어보거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때도 아주 친절하게 대응해준다.
우리나라에선 나이 지긋한, 혹은 노부부가 손을 꼬옥 잡고 다니면 불륜 소리 듣기 십상이란 말이다.
두번째.
내가 저녁을 먹고 있는 지금 이곳에 그런 커플들이 있는데,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 부부들이다. 왜 함께 여행을 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어디로 보나 한 삼십년 같이 살아서 더 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은 커플이다. 이렇게 로맨틱한 장소, 이렇게 낭만적이고 예쁜 식당에서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한마디도 없이 100년 동안의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을 한가득 안고 있는 커플들을 보면 정말로 비극이다. 이 지루한 커플들을 보면, 아 글쎄, 나라도 말을 걸어서 저 심오한 심연의 침묵을 깨 주어야할 것 같다. 그래서 지루한 커플의 여행을 보면, 그들이 뭔가 불쌍해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얘기를 쓰다가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 깨닫게 된 것인데, 가장 불쌍한 존재는 함께 여행할 이가 없거나, 혼자 여행하는 할머니일 것 같은 벼락 같은 깨달음! (이것은 필시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매우 심각하다)
지금은 혼자 여행하면서 뭐 인생에 대해 고민한다는 둥, 달콤한 외로움이라는 둥 똥폼이라도 잡을 수 있다고 치자. 머리는 탈모가 오고, 노안이 오고, 이는 덜컹거려 산해진미도 당췌 뭔 맛인지 모르겠으며, 버스의 짐칸에서 케리어를 꺼내들 힘도 빠진 할머니가 혼자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건 말도 안되는 비극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삶에 대해 해탈하고 관조해야 할 나이 육, 칠십에 인생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좀 웃기지 않은가? 그건 호날두가 동네 조기축구에 들어가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이냐. 지금 권태로운 노부부의 여행에 측은지심을 가질 때가 아니란 말이다!
바야흐로 때는 커플의 시대다.
권태로운 노부부의 여행을 절대 우습게 보지 말지어다.
1. 연인들이 떠나는 여행 (꺄아~~!! 부부가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다)
2. 동성 친구와의 여행 (취향, 마음이 맞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칫 의 상할 수 있다)
3. 가족 여행 (갈수록 좋아지는 아이템. 이거 상당히 좋다.)
4. 혼자 하는 여행 (갈수록 재미 없어짐)
5. 성격 안맞는 친구와 여행 (의 상하는 건 기본, 여행 후 관계 청산 가능성도 있다)
6. 커플에 동참하는 여행 (설마 이런 미친 짓을 누가 하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