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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an 14. 2019

오베르쉬와즈 가는 길 1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책이 많지 않았다.


강원도 지방의 가난한 말단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그 적은 월급을 쪼개어 사글세방에서 다섯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이웃집 경희네 집에 놀러가면 너무나 예쁜 그림책들이 많았는데, 그때 난 색색깔의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그 책들을 보며 황홀경에 빠졌을 뿐, 엄마에게 그림책들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가난은 그저 당연한 것이었기에 그것이 불행하지도 않았다.

 

언제인가 크리스마스였나, 딱 한번 아빠가 잠든 머리맡에 흑백으로 된 콩쥐팥쥐 그림책을 선물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난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칼라 그림책을 꿈꾸었지만, 흑백으로 된 장화홍련이나 콩쥐팥쥐도 좋았다. 그렇게 갖고 싶던 내 책이 아니었던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흑백으로 된 그 책에 색연필로 예쁘게 칼라를 입혀주었다.  

 

그렇게 내게는 책이 없었다. 지금 같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수나 있었을텐데 어린 시절의 강원도 소도시에는 책을 빌려볼만한 도서관도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나이차가 많던 오빠에게는 엄마가 큰 맘 먹고 계몽사인가 어디에서 나온 60권 전집을 사주셨는데, 무언가 읽고 싶을 때 내가 읽을 수 있었던 책들은 바로 그 다섯살이나 차이나는 오빠를 위한 전집들이었다. 주로 '대장 불리바',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초등 1, 2학년에 불과했던 내게는 참으로 재미없어 보이는 책들로, 그림도 없이 깨알같은 글씨만 가득차 있던 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좋아했던 건 아마도 그 책 안에 그림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미술의 세계'라는 책이었는데 얼마나 읽었던지, 수사가 아닌, 문자 그대로 책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질 때가지 읽었었다. 짧은 미술사책이었는데,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소의 그림에서부터 그 책은 시작한다.


피레네 산맥 근처 작은 마을에 살던 한 여자아이가, 숨바꼭질을 하기 위해, 혹은 엄마에게 야단 맞아 혼자 울 곳을 찾아 산 속 동굴로 들어간다. 한참을 울다 눈을 떴을 때 느닷없이 나타난 커다란 소의 그림에 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


물론 이 장면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대해 읽던 나의 상상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번역서였을지 누군가가 직접 쓴 것인지 모를 족보 없는 미술사를 접하게 된다. 내게는 화려한 디즈니 그림책은 없었지만, 그 흑백의 '미술의 세계'라는 책은 그렇게도 재미있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책은 르네상스와 바로크로부터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와 인상파를 거쳐 입체파까지 연대기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책도 흑백이었기에 나는 세잔의 생빅트와르 산이 무슨 색일까 궁금해했고, 인상파가 어떻게 햇빛에 비치는 다양한 색감들을 표현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앙데팡당에 전시되었다던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라는 그림속에 나오는 그 여체도 그렇게 뽀얗고 아름다운 살결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초상화가로 이름을 떨치다가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자화상만을 그리기 시작했고, 더이상 그림 주문이 없는 와중에 결국은 지켜보는 이 없이 쓸쓸히 눈을 감는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연민과 고독한 예술가의 삶에 눈물을 흘렸다. --> 이건 지금 나의 표현이고, 당시에는 그냥 렘브란트가 너어~무 불쌍해 렘브란트 부분에서는 늘 펑펑 울었다. ㅎㅎ  


 

그리고 시간이 지나 루브르에서였던가, 어느 유럽의 미술관에서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에 나오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그 늙고 지친 예술가의 외로운 눈동자가 세상에 대한 회한과 미련과 원망어린 눈빛으로 날 응시하는 걸 본 어느 날, 난 그때 그 시절처럼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경외했던 미술가의 작품을 직접 본 것에서 온 스탕달 신드롬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그 때 유럽에서 나는 그 늙은 화가만큼이나 외로워서였던가.

 

그 미술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 바로 이 렘브란트 부분과, 고호와 고갱의 이야기였다. 고호와 고갱의 이야기에서 난 왠지 고호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고호가 질투했던 고갱을 조금 얄미워했다. 아마도 잘나가는 증권브로커였던 고갱에 비해 고호는 어린 시절의 내가 봐도 더 이상 불행할 수 없을만큼 불행한 사람으로 보였고, 나의 DNA에 새겨진, 내가 가난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베르 쉬와즈 Auvers Sur Oise.

파리에서 북쪽으로 20여킬로 떨어진 작은 마을. 고호의 마지막 그림들이 그려지고, 그가 숨을 거둔 곳. 이주의 휴가 동안 고호의 마지막 순간을 찾아 나는 오베르 쉬와즈로 떠났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그 뜨거운 태양 아래 고갱과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지내던 고호가, 고갱에 대한 열등감과 불화 속에 혼자 떠나온 오베르 쉬와즈. 그의 마지막 생을 살아냈던 그 곳에서 난 고호의 마지막 모습을 만나고 싶었다.

 

아무 준비없이 혼자 훌쩍 떠나온 내게 오베르 쉬와즈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미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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