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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an 14. 2019

오베르쉬와즈 가는 길 2

오베르쉬와즈, 까마귀가 나는 밀밭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파리에서 무작정 기차를 탔다.


고호의 마지막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있는 오베르 쉬와즈로 가기 위해서는, 파리에서 퐁투와즈까지 간 다음, 오베르쉬와행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퐁투와즈 행 기차를 잘 타긴 탔는데, 문제는 퐁투와즈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류장 지도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를 깜빡깜빡 불빛으로 알려주는 IT강국 한국과는 달리, 파리의 외곽기차는 내가 지금 어디를 지나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각 역에 도착했을 때 잠깐동안 보이는 안내판에 의존해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 안내판조차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난 이미 퐁투와즈를 지나쳐 오베르쉬와즈와는 영영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로 몰랐다. 준비없이 대충 떠나온 자의 최후는 늘 이러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Parle vous l'anglais?

(영어 할줄 아세요?)


프랑스 사람들은 저 질문에 Non이라고 대답하거나, 고개를 가로젖거나, 혹은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지금 기차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베르 쉬와즈 가는 법을 아는 누군가를 찾는 것밖에 없었다. 기차 칸에 탄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Parle vous l'anglais?

같은 칸에 있던 다섯명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한명은 Non이라고 대답했다.


옆 칸으로 갔더니 두명이 앉아있었다.

내가 'Excuse moi'라고 이야기했을 때 한명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다른 한명은 나를 쳐다보더니 이상한 잡상인 혹은 집시라고 생각한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조금 다급해진다. 오베르쉬와즈는 커녕, 퐁투와즈조차 찾지 못하고 머나먼 곳을 떠돌다가 반대방향 기차를 잡아타고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인가. 조급한 마음에 기차의 2층으로 올라갔다. 텅 빈 기차 안 끝 쪽에 여자 한명이 앉아 있었다.


포기 상태로 Parle vous l'anglais? 라고 물었을 때,

아,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가장 경쾌한 Oui! 였다.

 

Oui! 라고 했다가 다시 웃으며 Yes, 라고 고쳐 말한 그녀의 이름은 다프네.

그렇게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을 가진 그녀와 퐁투와즈로 가는 2층 기차 안에서 만났다.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 일본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온 그녀는, 부모 중 한명은 이란인이며, 지금은 통역사가 되기 위해 공부중인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퐁투와즈에서 살고 있고, 자신이 어렸을 때 오베르쉬와즈에서 살았으며, 자기가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린 후 오베르쉬와즈 가는 기차를 갈아타면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뤠잇!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금 난 오베르쉬와즈에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 가고 있는데 거기도 호텔은 있겠지? 라고 물어보았다. 별 생각 없이 물어본 것이었는데, 다프네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음... 글쎄, 호텔이 있긴 하지만 워낙 작은 도시라 방이 없을수도 있어.

하지만 니가 원하면 우리집에서 자도 돼!"

 

그때였다. 내가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이 과도한 친절은 무엇?!

 

다프네는 굳이 비싼 호텔에 돈 쓰지 말고 자기 집에서 자라고 날 설득했다. 오베르쉬와즈는 작은 도시이니 빨리 보고 퐁투와즈로 돌아오면 나를 픽업하러 오겠다는 것이다.

익스큐제무아? 우린 5분 전 기차에서 만났다고요!

 

갑자기 그녀의 친절이 무서워졌다.

혹시 그녀는 말로만 듣던, 툴루즈 로트렉의 이야기에서나 들어봄직한 매춘굴 포주의 딸이 아닐까. 아니면 혼자 배낭여행하던 여자, 실종 후 이란에서 숨쉰 채 발견, 뭐 이런거....???

 

퐁투와즈에서 함께 내린 그녀는 오베르쉬와즈행 기차를 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주었고, 퐁투와즈역으로 돌아와서 다시 전화를 하라고 신신당부하고 가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건 위험하니까.

 

기차에 타서 출발을 기다렸다. 1분 정도 남은 것 같다.

그때 저 멀리 다프네가 숨을 헐떡이며 다시 기차로 뛰어오는게 보였다.

곧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와서 다프네가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파흐동. 쒀리.

동생이 파리에서 공부하는 중이라 널 동생 방에서 재우려고 했는데,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하필 동생이 오늘 집에 온다는거야. 아무래도 너에게 방을 줄 수 없게 됐어. 미안해. 하지만 혹시 너가 내 방에서 자도 된다면 연락해. 내 방엔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아마 넌 바닥에서 자야할꺼야. 그래도 괜찮다면 전화해."

 

그녀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차는 출발했다. 오베르쉬와즈행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오늘은 퐁투와즈행 기차 2층에서 만난 다프네 집 방바닥에서 자야겠네.

저런 디테일까지 설명하며, 방바닥에서 재운다고 솔직히 얘기하는 포주는 아마도 없을 것이기에.

 

그렇게 나는 오베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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