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그리고 낯선이와 테니스
굿모닝~!
Mike의 집을 떠나1 베드룸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UBC 대학 근처의 조그마한 1 bedroom, 1 bath 신축 콘도가 에어비앤비에 'new'로 떴더군요. 사진 속에서 콘도는 보기만 해도 비싸보이고, Mike의 집에 비하면 훨씬 비싸지만, 콘도의 렌트비를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나왔더라구요.
후기도 없고 좀 미심쩍었지만, 얼른 Mike가 없는 나만의 공간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저는 덜컥 예약을 했습니다. 이상한 곳일 수도 있으니 딱 일주일만.
에어비앤비 호스트 Jenny는 답변이 느렸습니다. 세입자 입장으로 "Hi~ Good to see you! I am traveling in Vancouver and I love to stay at your beautiful place.... 블라블라~"하면 10시간 후 "ok"라고 답변이 왔죠.
점점 저의 메세지에도 Hi나 Thanks 같은 인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저의 의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결제를 하고나서 아파트 호수를 물어봤습니다. 왜 주소를 알려고 하느냐고 하더군요. 아니, 이양반아... 내가 나중에 찾아가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나서 제 전화번호를 묻더군요.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당신 전화번호도 알려달라고 하자, 자기는 Jenny가 아니라 Jenny의 helper(?)라면서, 전번은 알려줄 수 없대요. 그리고 곧바로 전화가 왔어요. 아마도 제 전번이 실제로 있는 번호인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우리 사이 불신이 싹튼 것은...
Jenny's helper는 아파트 호수도, 이름도, 전화번호도 알려줄 수 없지만 체크인 하는 당일에 아파트 앞에서 키를 전달해주겠다고 해요. 마음이 상한 저는 당장 잘 곳도 없으면서 호기롭게 취소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수수료 50%를 내라네요.
제가 좀 화를 내자, 조금 있다가 Jenny의 family man라는 남자가 전화가 왔어요. Jenny의 family맨은 저 때문에 그릇도, 후라이팬도 새로 샀다면서, 와인 한병을 주겠으니 오라고 합니다. 제가 이 에어비앤비의 첫 손님인가 봅니다.
체크인하는 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아파트 앞으로 갔습니다. 시간 맞춰 전화가 오더니 옆에 주차된 차에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같은 중국인 여자가 내립니다. 도도한 모습의 그녀는 찰랑거리는 은색 샤넬백을 들고 있더군요. 아니 Helper라며...
반전은 다음입니다.
제가 이 아파트에 반해버렸다는 사실이죠.
무슨 이상한 소굴이 아닐까 했는데, 이 신축 아파트는 아름다운 뷰가 있는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취소하겠다고 난리치던 저는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묻습니다.
"나 여기 좀 더 연장해도 돼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단답형으로 "No"라고 했어요.
여기서 제가 반한 아파트 나갑니다~
역시 돈은 정직합니다.
서울이나 밴쿠버나 비싼 이유가 있는 게 부동산인 것 같습니다. 부엌이 있으니까 마트에서 음식을 사다가 해먹으면, 오바한 비용은 충분히 아낄 수 있다고 정신승리 중입니다.
과연 Jenny는 실존하는 인물일까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아파트는 에어비앤비를 금지하고 있는 아파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린 것이죠. Jenny는 가상의 인물이 분명하지만, 그 집의 주인은 샤넬백의 그녀가 맞을 것 같고요.
이 모든 걸 즐길 시간이 있을 땐 돈이 부족하고, 돈을 벌 땐 시간이 없는 인생의 아니러니.
어쨌든 지금은 돈보다는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오늘의 밴쿠버였습니다.
덧.
오늘 인터넷카페에서 테니스 칠 사람 구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해서 만난 분이 있습니다. 다운타운의 David lam park tennis court에서 만나서 테니스를 쳤는데, 그녀는 밴쿠버 예일타운에서 살고있는 분이었고요, 편의상 여기서는 예일타운 샤라포바라고 부르겠습니다. 암튼 예일타운 샤라포바와 테니스는 20분인가 치고,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나눈 시간은 한시간 이상이었네요. 왠지 밴쿠버 친구가 한 명 생긴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