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얻은 숙소에서
굿모닝~
밴쿠버에서의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길고도 쏜살같이 간 시간이었습니다.
와보니 생각보다 더 좋아요. 영국과 독일에서도 살아보고, 미국 출장도 많이 다녔는데, 캐나다 밴쿠버는 여행지라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오네요. 1주차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상상했던 밴쿠버와 실제 밴쿠버는 이런 것들이 달랐습니다.
1. 밴쿠버는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곳?
친구들은 늘 말했죠. 밴쿠버는 도시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그래서 오기 전에 저는 나무들이 많나보다~ 공원이 많은가보다~ 했죠.
와보니 현실은요?
나무가 많다는 건 조금 안맞는 표현이고요, 그냥 집 옆에 아마존이 있었습니다.
아래 위성지도를 보시면 어느정도의 숲이 있는지 보이시지요. 예시로 제가 묵는 동네 위성지도를 찾아봤어요.
빨간 점이 있는 부분이 제가 묵는 지역인데요, 오른쪽으로 3분 정도 걸어가면 아마존이 나옵니다. 이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으면 지구 반대편으로 나올 것 같은 느낌...
2. 밴쿠버에는 개가 많다 = 개조심 해야겠다.
듣던 바대로 밴쿠버에는 정말 개가 많았습니다.
개를 무서워하는 저는 개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근데 이 개들이.... 뭐라고 해야하나,,,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쪼꼬마한 개들이 깽깽깽 끄르러어어렁 와오왕왕! 짖는 모습을 자주 봤고, 산책나와서 너무 흥분해서 오줌을 갈기면서 정신 못차리는 개들이 많았는데…
밴쿠버에서는 덩치가 산만한 개들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무슨 퀸 엘리자베스가 걸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저보다 우아하게 걷습니다. 어찌나 살랑살랑 걸어오는지 하마터면 걸음을 멈추고 유어 마제스티~ 경례할 뻔.
밴쿠버에서 조심해야할 것은 '개'가 아니라 '곰'이었습니다. 얼마전에도 길에 곰이 나왔다고 해요. 멧돼지나 아기곰 수준이 아니라 동화책에 나오는 크고 검은 색 곰 말이에요.
진짜 곰 만나면 어떻게 하지요? 예전에 곰 만나면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죽은척하라고 했는데, 곰은 의외로 나무를 잘 탄다고 하고요. 또 곰 앞에서 죽은척하면 장난감인지 알고 깨물고 물고 찢고 한다네요. 곰을 만나면 그냥 얼어붙지 않을지. 후달달.
길에서 맨날 보이는 청설모 얘긴 해봤자 입만 아프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첫날 청설모를 보고 카메라를 켜던 저도 이튿날부터는 더이상 청설모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3. 밴쿠버, 아시아인의 제2의 고향인가
밴쿠버는 중국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라는 말이 있던데요. 중국인이 정말로 많더군요. 제가 듣는 테니스 레슨은 총 7명이 참여하는데요, 그중에 4명이 중국인이고요, 제가 있으니 아시안이 5명, 캐나다인은 2명에 불과합니다.
특히 제가 있는 UBC 근처는 중국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첫번째 에어비앤비도 (Mike), 두번째 에어비앤비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주인이 중국인들이네요. 덕분에 인종차별 같은 걸 겪을 틈이 없다는 장점이 있겠네요. 밴쿠버의 주택가격이 턱없이 올랐다고 하는데, 중국 부자들이 집을 엄청난 가격으로 끝도 없이 사들인다고 합니다.
4. 공기
지루하겠지만, 공기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아침에 집밖에 나와 심호흡을 했는데, 와.... 폐 속의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란.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꽃향기 같은 것도 섞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미세먼지가 가득한 공기를 그것도 마스크를 쓴 채 마셔야했던 서울과는 너무 다르네요. 공기질을 체크해보니 이렇군요. 잊고있던 파란색 공기는 이런 느낌이었어요.
5. 조금은 덜 외로운 사회
밴쿠버는 한국보다는 덜 외로운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이 친절한 편이고, 웃음이 흔하네요. 낯선 이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일들도 종종 있구요.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어쩌면 이 사회는 외로움을 관리하는 사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곳의 커뮤니티 센터가 매우 신기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센터 같은 곳일텐데, 처음 UBC의 웨스브룩 커뮤니티센터를 방문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피아노가 있는 방 하나에서는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아이가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고, 옆 방에서는 노인들이 모여서 또 뭔가를 하고 있고, 그 옆에는 성인들이 모여서 베드민턴이나 피클볼을 치고있는 모습이, 각자 너무나 자연스럽워 보였습니다.
고향의 저희 부모님도 그런 프로그램을 자주 이용했었는데요, 노인복지센터와 같이 세대를 조금 나누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곳은 여러 세대들이 한 공간에 섞여있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우리가 각자도생의 분자화된 삶을 살고있다면, 이곳은 계속해서 어울리기를 권장하는 느낌이었습니다. 'Belong'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구요. 이곳의 테니스 레슨을 듣고 나서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라면, 20대의 그녀와 제가 함께 커피를 마시려 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6. 도서관
밴쿠버 도서관들 왜 이렇게 좋나요. 카페에 큰 테이블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도서관 때문이었습니다. 도서관이 많고, 공부나 일을 할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충분하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어서 언제든 자유롭게 공부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원래 도서관 러버이긴 한데요, 참으로 아름답고 고요하고 좋습니다. 일주일만에 저의 페이버릿 도서관이 생겼는데요,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머지 아예 다음 숙소를 이 도서관 근처로 잡았습니다. 저 멀리 설산과 바다도 보이는 곳이에요.
참고로 밴쿠버 공립도서관 (VPL)에서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6개월보다 길게 있는 사람은 무료로 카드를 만들 수 있지만, 저같은 여행객은 돈을 내고 ($30) 카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번에 10권까지 3주간 책을 빌릴 수 있어요. 한국책 몇 권 빌려 왔습니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장강명의 에세이를 한 권씩 빌려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감상이 달라지겠죠?
햇볕이 너무 좋아서 밴쿠버를 너무 좋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 밴쿠버의 1주차 감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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