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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May 29. 2023

[밴쿠버] 한달살기10 - 3주차 감상

내가 좋아하는 밴쿠버 동네 카페 Loafe에서

굿모닝~



어느새 시간이 흘러 벌써 3주가 갔습니다. 

이제 4주차에 접어드니까, 와 벌써 돌아갈 때가 되어가나요.


이제 동네도 알고, 어느정도 적응하고 놀만 하니까 돌아갈 때라니요. 시차도 극복하고, 거리도 익숙해지고, 좋아하는 카페도 생기고. 좋아하는 도서관도, 나만의 루틴도 생겼습니다. 이제 좀 제대로 놀아보겠다~ 싶은데 어느새 돌아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뇨. 흑흑


인생이랑도 비슷한 것 같은데, 이어령이 그렇게 말했어요. 인생은 너무 짧아서, 밖에서 한창 놀고있는데 엄마가 집에 오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창 놀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돌아가야할 때라고.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제가 이것 때문에 퇴사했습니다... 놀려고 할 때 할머니 되어있을까봐요. 얼른 얼른 놀려구요.ㅎㅎ 나중에 '좀 더 열심히 일할걸'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더라구요. 


각설하고, 꽉 찬 3주가 지나갔으니 3주차 감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다만, 여행객으로 너무 좋은 점만 집중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감안하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


1. 익숙해진 자연


이제는 자연에 익숙해졌어요. 

아침에 집을 나서면 심호흡를 하게 되는 맑은 공기, 푸르른 나무들, 이슬이 내린 잔디와 나뭇잎과 꽃향기... 그리고 정말 조용한 동네. 이젠 몇 걸음마다 멈추고 넋놓고 바라보거나 계속 사진을 찍어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귀여운 청솔모도, 우아한 개들도 못본척 지나치고요. 이젠 곰만 안나타나면 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2. 익숙해진 친절함


친절함에도 익숙해졌어요. 

도로를 건널 때면 왜 차가 자꾸 멈출까, 빨리 안지나가고 뭐하는거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면서 뛰거나 운전사를 향해 꾸벅~ 인사하지도 않습니다. 꽤나 당당하게 지나갑니다. 오히려 건널목 주변에서 서성이기만 해도 차가 자꾸 멈추니, 이제는 건널목 앞쪽에서 서성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거 참 귀찮네~ 자꾸 멈춰대니깐. 난 건너갈 생각이 없다니깐~ 가라고~.



3. 되살아난 성별

이건 조금 미묘한 변화이기도 하고, 조금 논쟁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한국에 있을 때, 외국에서 온 여자들을 보면 나이나 외모와 상관없이 뭔가 여성적 매력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그게 그 사람의 어떤 정체성이나 자신감, 혹은 그 사람의 성격에서 나오는 매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반면에 저는 그 사람보다 날씬하고 다이슨 에어랩으로 머리를 이쁘게 꾸몄다해도, 저의 정체성은 '부장님' 혹은 '아줌마' 일 뿐이었죠. 나는 중년의 아줌마니깐... 여성적일리가 없잖아.


그런데요, 제가 여기서 여행객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혹은 사람들이 친절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운동화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데도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여성성이 나오는 느낌은 왜일까요. 이건 얼마전 도서관에서 저를 쳐다보던 어떤 남자가 'You are so cute'라고 말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모르는 사람에게 귀엽다는 얘기는 초딩때 이후로 처음 들어봤어요.... 감격한 나머지 저는 '땡큐'라고 얘기하고 말았네요. 


저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성과 여성성은 제로썸이라, 자연인이 되면 여성성은 사라지고, 여성적이 되면 자연인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해왔는데요. 자연인으로 살면서 여성성도 함께 회복될 수가 있나요? 저는 지금 자연인으로 돌어왔지만, 저의 여성성은 분명 0.2% 정도 올라갔습니다. 이 정체성의 회복은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는지, 조금 더 연구해보겠습니다. 



4. 다양성에의 관대함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에게도 '아이가 몇살이냐' 혹은 '아이가 몇이냐' 이런 질문들을 종종 받았습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느꼈는데요. 아이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질문이니까요. 저는 싱글이니까 아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만약 제가 아이를 절실히 원했을 경우, 혹은 아이가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더이상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이 질문은 얼마나 폭력적일까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아이랑 함께 있지도 않은데도, '어머님~', '아버님~' 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기분나쁜 걸 떠나서 진짜 묻고 싶어집니다. 내가 니 엄마도 아닌데 왜 어머니라고 하냐고. 그 호칭은 전혀 존칭이 아니라구요.


그런데 지난번 크리스틴과 얘기할 때, 크리스틴은 '아이가 있느냐'라고 묻더라구요. 결혼 - 유자녀, 결혼-무자녀, 싱글 - 유자녀, 싱글 - 무자녀, LGBT 등 다양한 경우가 존재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도 위배되지 않는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참고로 장성한 아들이 둘 있는 크리스틴은 혓바닥에 피어싱을 하고 있네요. 말할 때마다 자꾸 혀고리(?)가 눈에 들어와요. 혀고리를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개성이 마음에 듭니다.


너무 밴쿠버에만 있었더니 사람들이 록키나 다른 곳은 안가냐고 묻네요. 밴쿠버에만 3주를 있었는데, 아직 스탠리파크 자전거도 안타보고, 게스타운도 안가봤네요. 3주동안 도서관만 줄창 다니고 있는 도서관 러버인 저, 정상인가요? 


관광지는 마지막주에 몰아서 보겠습니다.

어디나 초록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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