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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Jun 03. 2023

[밴쿠버 한달살기 12] 휘슬러 페어몬트 후기


오늘은 조금 재수없게 시작해봅니다.

호텔의 하얀 침대시트 속에서 일어나며 인사하는 "굿모닝 포시즌~" 이런 느낌으로,

"굿모닝~ 페어몬트~"
후후.


페어몬트 휘슬러, 제가 한번 묵어보았습니다.

전 퇴직금을 모아 한달살기 탕진잼을 떠나온 사람이니까요.

사실을 말하자면, 쿠폰이 있었는대요. Hotels.com은 10박 채우면 1박이 무료로 나오잖아요. 오랜동안 아껴두고 있던 호텔 1박 쿠폰을 썼습니다. (갑자기 찐부자에서 쿠폰팔이로 대추락했나요? ㅎㅎ)

백수답게 돈 얘기를 하려고 하니 불편한 부자들은 뒤로 가기 해주십시오. 1박에 약 80만원 하는 휘슬러 페어몬트가 비수기 찬스로 40만원 정도로 내려와 있었어요. 거기에 1박 쿠폰을 하니까 불과 5만원 안쪽으로 이 호텔에 묵을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호텔은 투숙 후 Experience fee니 뭐니 예상치못했던 비용을 청구하는데...)

그래도 제가 내일 출근해야 한다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쿠폰이 있거나 없거나, 휘슬러 페어몬트에서 묵을 수 있겠습니까. 어림없죠. 그러니 저는 지금 페어몬트에 묵어야합니다. 쿠폰을 쓰는 것도 시간이 있을 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도착한 페어몬트 휘슬러입니다.
호텔 뽕을 뽑아봅시다.

호수 자전거 놀이? 노노~ 호텔 놀이!
곤돌라로 산 구경? 노노~ 산 충분히 봤자나~ 호텔놀이!
스키? 스키 잘 못타니까 호텔놀이!

호텔 바로 옆에 곤돌라 타는 곳이 있는데, 5월말 기준으로는 정비하느라 때마침 문도 닫았네요!

(실망하지도 않음. 호텔놀이 할꺼니깐~!)



일단 수영장으로 가봅니다.
따뜻한 온수풀이 반깁니다.



온수풀은 건물 안으로 밖으로 이렇게 이어져있어요.


바로 앞에 자쿠지도 사우나도 있어서, 추우면 들어가있으면 됩니다. 좀 지져줘야죠.


다행히 이 수영장은 그리 깊지 않네요. 수영장에서는 역시 추리소설입니다. 밴쿠버 도서관에서 빌려온 도진기의 '합리적 의심'을 읽고 있습니다.


액티비티가 매우 많은데요 (그래서 Experience fee를 하루에 $30 받는듯). 좋은 액티비티로는 Lost Lake 자전거 투어, 카트타고 골프장 투어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만석이었어요. 관심있는 분들은 미리 미리 예약을 해야합니다. 호텔 도착하면 예약하라고 안내장을 줍니다.


예약이 비교적 쉬운 액티비티로는 요가, 테니스 등이 있습니다.
테니스장이 호텔 내부에 있어요. 예약만 하면 테니스 라켓과 공도 빌려줍니다.



제일 싼 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뷰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호텔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소한 직원들의 친절함 때문이었는데요.

예전에는 호텔 평가항목에 있는 '서비스'란 항목이 뭔지 잘 몰랐어요. 가성비와 위치만 중요했죠. 싸고 청결하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한가?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까 어느순간 알게 되었어요. 나를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와 표정, 이슈가 있을 때의 대처방법 이 모든 것들이 가격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매력이라는 것을.

좋은 호텔에 내 돈 내고 가서도 주눅이 들 때가 있는데요. 마치 백화점에서 손님은 나지만, 그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들 때 그렇습니다. 페어몬트 휘슬러는 최고의 호텔이지만, 위압감이 없는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일테면 다음과 같은 사소한 것들 때문인데요.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등산 때문에 너무 피곤합니다. 아침식사를 하러 호텔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다만, 조식부페는 비싸기도 하고, 또 그렇게 많이 먹고싶지도 않아서 고민하고 있을 때 웨이터가 옵니다.

나: "부페 말고 단품으로 시켜도 될까?"
웨이터: "어브 코오오오~~~올쓰!"
(즉시 단품 메뉴판 대령함)

나: "근데, 나 여기서 받은 쿠폰이 있는데, 이거 여기서 써도 될까?"
(단품에 쿠폰이요? 아이구, 진상.... )
웨이터: "어브 코오오오~~~올쓰! 이거 식사에 적용하자."
나: (이, 이봐... 이거 드링크 쿠폰인데...?)

슬슬 이 직원이 걱정되기 시작하네요.
암튼 공짜로 식사 득템!


렌트를 했던 렌트카 매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시간이 너무나 빠듯해서 기름을 채우지 못하고 도착했어요. 기름을 못채우고 시간 내에 반납하는 것과, 기름을 채우고 늦게 반납하는 것 중에서 뭐가 더 이익인지 계산해야 했지만, 기름은 또 어떻게 채우는 것일까? 너무나 피곤했던 나머지 그냥 반납하러 갑니다.

반납하는 곳에서 만난 인도인 직원 N씨.

나: "제때 오려고 기름을 못넣었는데, 추가 차지 있겠지?"
인도인 N씨: "아이고, 그거 비싼데... 방법을 알려줄게. 이렇게 해봐."
나: "어떻게?"
인도인 N씨: "길 나가서 우회전, 우회전 하면 바로 주유소야. 거기 가서 기름 넣고 와. 반납은 지금 한걸로 처리할게."
나: "우와 너 짱이다! 인터넷에 코멘트 남겨도 될까?"
인도인 N씨: 응, 내 이름 N****야. 스펠링 정확히 써~ (ㅋㅋㅋ) 아 참, 내가 알려준 트릭에 대해선 쓰지 말고! 알지? (찡긋~)"
나: "어브 코오오오오오오~~~올쓰!

곳간에서 인심나는 캐나다식 관대함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주눅들게 하지 않아서 좋네요.
쿠폰을 사랑하는 나는 당신들 역시 사랑할 수밖에....

휘슬러의 다음날.
도서관 러버는 호수 산책 대신 도서관 산책을 나섭니다. 근처에 휘슬러 도서관이 있네요.

소박하고 따뜻하고, 스터디 공간도 편안합니다.
오늘은 휘슬러의 도서관 사진으로 마무리 합니다.


나중에 쿠폰에 연연하지 않는 찐부자가 되어 휘슬러에 스키여행을 온다해도, 저는 페어몬트에 묵으면서 이 도서관에 매일 올 것 같아요.


쓰고보니 결국 쿠폰으로 싸게 묵고 싸게 먹어 좋았다는 소박한 이야기… ㅎㅎ

이상, 오늘의 휘슬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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