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긴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킵고잉 Jul 01. 2017

[네르하] 수영장을 조심하세요 (2)

그 수영장은 이렇게 생겼다.



깊은 곳을 무서워하는 나는 얕은 곳에서만 이렇게 수영 하고 있었다.


배영으로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뜨거웠다. 팔을 들어올리자, 얼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눈이 부시다. 한동안 전력질주 했더니 피곤하다. 슬슬 일어나서 맥주 한잔 하면 딱 좋겠네.

어디까지 왔지, 틀림없이 반대편 수영장 난간에 닿을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이때 난 배영을 하고 있어 앞을 볼 수 없었다)

아직도 반대편 난간에 다다르지 않은 겐가. 이상하네.. 혹시 이러다가 사차원으로 빠져드는 건 아니겠지. 여긴 어디? 갑자기 좀 무서워지니 일단 일어나보자.


쑤우우우우욱!


수심 1m의 수영장에서 일어났는데, 발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 뿐이었다.

햇빛은 빛나고, 공기는 청명하고, 세상은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외국인들은 여전히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난 끝도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난 수영을 잘 하잖아, 수영해서 빠져나오자, 에잇~!'
근데 뭐지? 몸이 앞으로 눕혀지지가 않는다. -_-;;
'자, 팔을 뻗고 발로 물차기를!!'
속수무책.
개미지옥.. 빠져나올 수가 없다...

앗, 저기 외국인 아주머니가 이쪽을 보고 있네. 내가 허우적대는 게 안보이나? 하긴, 좀 전까지 전력질주 수영을 하던 내가 물에 빠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물을 세 번쯤 마셨을 때,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래서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죽는구나...'


혼자 여행하다 바다도 아니고 수영장에서 빠져 죽은 여행객... 사람살려라고 소리치기로 했다.

"헤... 헲 ㅍ.. 미 (꼬르륵)"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잘 안들리나봐, 다시 한번.

"ㅎ.. 헬ㅍ.....(꼬르르르르르륵) 밐! 헲! 밐!"
이런 제길,
물이 입에 들어와서 외칠 수가 없잖아!!!

나를 마주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내가 한참 소리를 쳤을 때도 미소지고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5초간 얼음이 되더니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멀리서 아주머니가 달려오는 것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에도 물을 2리터는 먹은 나는,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배영을 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배영은 됐다. 아주머니가 달려왔을 때 나는 죽자사자 배영을 하고 있었다. 파닥파닥 파다닥!!! ㅠㅠ -_-;;;

아주머니 손을 잡고 뭍으로 올라오니 아주머니가 다정하게 물으셨다.
"너 다리에 쥐났던 거니..?"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그땐 더 못했던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No,, I just swim... (아, 과거형 스윔 스웸 스웜이니까..) swam..... no.... "

그 이후로 혼자 여행할 때는 깊은 수영장을 피하게 되었다. 나에게 네르하가 기억에 남는 도시인 것처럼, 그 아주머니에게도 전력질주하다 물에 빠진 동양여자를 구해준, 독특한 여행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네르하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건 하나뿐이다.
넓고 아름다운 그 수영장.
치명적으로 깊었던-.


[ 내가 수영하던 모습 ]


끗.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 네이버 http://post.naver.com/likeitnow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eepgoing_yo/

매거진의 이전글 [네르하] 수영장을 조심하세요!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