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e to earth - seasons
2020년 8월 4일에 발매된 EP [summer flows 0.02]의 3번 트랙, wave to earth의 seasons. 한국어로 번역하면 '계절들'이라는 뜻이 된다. 지난여름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평소처럼 글을 쓰다 막혀 잠시 멍을 때리는 사이 귀에 꽂혀 황급히 음악검색을 켜고 찾게 된 노래. 국내 밴드이지만 외국어 가사를 주로 써내고, 잔잔한 듯 편안한 사운드를 갖고 있지만 슬픈 가사를 동반하고 있다.
"난 지금 무너지고 너에 비해 보잘것없는 사람이야. 내가 너의 삶을 망칠까 두렵고 저 나무의 잎이 지고 다시 나는 동안 너는 나를 떠나가겠지, 난 죽어서 땅에 묻히고 내가 사라진 대도 아무도 모를 테지만 모든 기회들을 이곳으로 가져와 너에게 줄게. 나는 항상 널 위해 기도할게. 만약 내가 너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내 모든 삶, 모든 계절들을 너에게 줄게. 너의 옆에서, 너의 사계절이 될게."
가사를 요약해서 적자면 이런 해석이 나온다. 정말 이 노래에서 본인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고, 상대방을 한참 위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빛나는 상대방을 위해서 본인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을 전한다.
노래의 전반적인 멜로디는 모든 것을 다 품어주고 이끌어가 줄 수 있는 든든한 길잡이의 역할처럼 느껴지다가도, 가사를 보고 듣자면 절대 너의 옆에 내가 있을 수는 없지만 그런 너를 받쳐줄 수 있는 받침대 역할만으로도 만족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분명 가사에서는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고, 내 모든 삶과 계절들을 너에게 줄게." 라며 응원을 해주고 있지만, 나는 그 가사 안에서 본인의 찢어질 듯 아픈 마음과 가득 차오르는 슬픔들을 꾹꾹 눌러 간신히 한 글자 한 글자 괜찮은 척 뱉어내는 어둠이 가득 들어찬 얼굴 위 힘겹게 웃는 미소가 보였다.
아마 wave to earth는 이 트랙을 통해서 많은 생각이 들도록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한적한 햇살이 가득 들어차는 카페에서 나오는 포근한 멜로디라인에 서정적이면서 극도로 슬픔을 절제하며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는 가사.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읽고 노래를 다시 들으니 "지금 내 머릿속에 차오르는 이 감정이 무엇일까"에 대해 정말 고민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 그에 걸맞지 않아 그 사람의 곁에는 가지도 못하는 본인에 대한 혐오, 그러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지만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한 슬픈 의문.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종합된 깊고 진한 슬픔과 그것을 어떻게든 압축해 간신히 눌러두는 극도로 절제된 슬픔까지.
내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었다면 혼란 그 자체의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나는 누구이며 존재한다고 해도 되는지, 나 하나 사라지는 것쯤이야 아무도 모를 테지만 너를 보고 싶어 어떻게든 하루하루에 더 목매는 이상한 현실. 자존감은 올라갈 생각을 않고 당신과 나의 격차를 바라보며 더욱더 나를 혐오해 나가겠지.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감정의 '무' 상태로 접어들게 될 것 같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이 노랫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해되기 때문에 그저 조용히 감상할 수밖에 없는 노래인 것 같다. 붉게 타는듯한 하늘과 한강이 잘 어울리는 이번노래, wave to earth의 seasons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