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란 단어보단 노을이 좋아요

by STONE

석양이랑 노을, 누구나 다 알겠지만 유사한 단어이다. 둘 다 해가 질 때의 붉은빛으로 빛나는 저녁때의 햇빛을 뜻한다. 근데 왜 석양보다 노을이 좋냐고 묻는다면 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석양은 저물어가는 느낌이 확실히 강하게 든다. 왜냐하면 석양이라는 단어는 '노년'에 비유하기도 하고, 오롯이 해가 저물어간다는 의미만 담는 데에 비해 노을은 시간대에 관계없이 해가 지평선에 걸쳐 붉은빛을 내는 그 상황 자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우울감에 유독 취약했던 나는 힘들 때면 어쩔 줄을 모르고 방구석으로 숨어 들어가기 바쁜 어린애였다. 그런 내가 유독 좋아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하늘이 예쁜 날 사진을 찍는 거였다. 그래서 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보단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면서 만들어내는 색감들을 보고 있노라면 구름 사이로 내 우울감을 올려 보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금은 내 안을 비우기에 좋았다.


정말 한창일 때는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가 계단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봤고, 그건 저녁일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바다도 정말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다의 파도로 생기는 윤슬에 노을이 겹친다면 주황빛으로 반짝이는 그 모습이 너무 좋다. 그 빛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낭만에 살고 낭만에 죽는 나에겐 가장 좋은 안식처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최근에는 나 스스로 원하는 감정에 따라 초점을 바꿔가며 풍경들을 바라본다.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하고 잘 어울리는 단어를 고른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비워내고 싶은 것이 많다면 '석양'을, 무기력감에 휩싸여 내 안의 있는 것들을 끓어 올리고 싶다면 '노을'이라는 단어를 골라 바다라는 스크린에 비친 윤슬이라는 영화를 조용히 감상하곤 한다. 석양은 따뜻하게 나를 덥혀줄 모닥불 같고, 노을은 나를 끓어 올려 줄 용광로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둠이 하늘을 덮고 노란 달이 떠오른다. 뜨겁게 나를 덥히던 것들이 다 타고 재로 남아 사그라들면 그제야 난 자리에서 일어난다. 밤바다는 밤바다만의 매력이 있지만 노을바다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다. 밤바다를 볼 때는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술을 마신다.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조금 더 낭만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 밤바다는 유독 외로워서 그런가 보다.


외롭기도 싫고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시간대의 하늘과 바다를 사랑한다. 하염없이 밀려들어오는 그 수많은 생각들을 내치지 못할 정도로 사랑한다.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갖가지 생각들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새로운 생각들과 새삼 놀랍도록 신비한 감정들이 내 가슴속으로 한 번에 들어와 가끔은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벅차오르긴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저 노을과 석양과 바다가 아름다워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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